목회서신

내가 사모하는 부흥

황의정 목사 0 12,822 2018.04.28 07:53

처음 신학교를 갈 때에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부흥강사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소원처럼 막연하고 불투명했던 소원도 없었습니다. 그 때는 부흥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니까요. 참 꾸준히 부흥을 사모했습니다. 희미하였지만, 정확하지 못했지만, 상당히 왜곡된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늘 부흥을 사모했습니다.

10년 전부터 진정한 부흥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보지 못했던 부흥이 미국에 여러 번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흥분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수많은 교파들이 바람직하지 못하게 생겨난 것과 달리 미국의 교파들은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새롭게 태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교회성장이 멈추는 어간인 80년 초부터 선교의 붐이 일어났고, 90년대에 와서 선교사 파송의 절정기를 맞이하였습니다만 미국에서는 부흥이 일어나면서 새롭게 태어난 성장하는 교회들을 통해서 선교가 일어났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부흥의 현장을 찾아 헤맸습니다.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와 그 열기를 알고 싶었고, 부흥의 원동력인 성령의 충만을 받고 싶었습니다. 제가 적어도 4개의 부흥 운동의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큰 충격도 받았고, 동시에 성경에 나오는 그 위대한 성령의 역사도 보았습니다. 한 교회가 크게 성장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부흥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성장과 부흥을 혼동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마음에는 항상 부흥이 있습니다. 어디 부흥을 보내줄 곳이 없나? 어디 부흥의 불길을 전파할 충실한 종이 없나 찾고 계십니다. 역대기 하서 16:9절은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 . . 라고 말합니다. 이 부흥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한 사람,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철저하게 죄와 허물을 자복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케 하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 주님을 위하여 죽으라면 죽을 각오로 순종하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부흥을 사모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위해서, 죄 가운데 사는 수많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동족과 이방인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면서 부르짖습니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져나가듯 자신의 내면을 보면서 부르짖던 울부짖음이 가족으로, 이웃으로, 민족과 나라와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부흥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함도, 간단없는 기도도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 됩니다.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 밤마다 문 열어놓고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 더럽고 냄새나는 추한 몰골로 돌아온 아들을 무조건 사랑으로 영접하시는 그 아버지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가질 때까지 부흥이 지체됩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흥을 사모하다가 중도에 포기합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부흥을 기다리다가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흥은 반드시 옵니다.

부흥회 인도자 포틀랜드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어느새 무방비 상태로 무장을 해제하시더니 비수같이 꽂히고, 화살같이 깊이 박힙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던 앙금들이 흔들리더니 어느덧 움찔움찔하며 굴러갑니다. 하나님의 세밀하시고 자상하심이 나타납니다. 상한 마음들을 어루만지시는 주님의 손길이 사람 사람의 속사람을 쓰다듬고 계십니다. 흐르는 눈물을 개의치 않고 속을 훤히 드러내놓습니다. 흐느낌은 어느새 통곡이 되곤 합니다. 가슴을 치고, 바닥을 치면서 마음을 토합니다. 주님의 보혈이 흐르고 있습니다. 아픔의 눈물, 치유의 눈물, 정화의 눈물이 흐릅니다. 남자도 울고 여자도 웁니다. 청년도 부르짖고 노인도 몸부림을 칩니다. 몸을 추스르고 일어선 얼굴엔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초롱초롱 눈망울에 빛이 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심을 확인합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응답됨을 봅니다. 제 눈이 촉촉이 젖어들면서 사랑하는 우리 둘로스 성도들을 생각합니다. 나의 사랑이요 면류관인 둘로스를 생각하며 주님을 부릅니다. 보고 싶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합니다. 네,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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