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과 교사들이 지난 23일부터 29일까지 뉴욕으로 여름 수련회를 갔습니다. 지난 2010년에 이어서 2번째 시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세계의 정치 경제 수도인 뉴욕에 가서 넓은 세상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유엔 본부도 가고, Time Square(타임 광장)에도 가고, 27일에는 보스톤에 가서 Havard, MIT, Yale 대학교를 탐방합니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 캠퍼스에서 꿈을 키우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도 드리겠지요. 저는 “우리 자녀들이 교회와 민족과 국가를 경영하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입버릇처럼 기도합니다. 교회가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하면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갈수록 지도자 기근에 시달리는 전 세계 정황을 볼 때에 더욱 절실합니다.
오늘 날 교회는 큰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청소년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교회를 잘 다니던 청소년들도 대학에 진학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비율이 90%를 상회한다는 조사보고가 있습니다. 엊그제 신문에는 한국 개신교인의 연령 분포 조사가 나왔습니다. 1985년에는 60세 이상이 9.2%였는데 2014년에는 24.5%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에 20대 신자가 37.6%에서 15.1%로 줄었습니다. 20대와 30대를 합하여 64.2%에서 33.5%로 절반으로 줄어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님들도 고민이고, 교회가 모두 이 일로 힘들어합니다. 한국의 한 장로교단은 6,000여 교회 중에 교회학교가 아예 없어진 교회가 절반을 넘는다는 보고도 보았습니다. 수년 동안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영영 주님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분이 조사하여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교회를 다니던 15세 이후의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6대 이유들입니다.
1.
1. 교회가 지나칠 정도로 자기 보호가 심하다.
2. 2. 10대와 20대의 기독교 체험이 너무 피상적이다.
3. 3. 교회가 과학과 적대시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4. 4. 성에 관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이 너무 단순하고 비판적이다.
5. 5. 기독교의 배타적인 입장과 씨름한다.
6. 6. 교회가 의심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느낀다.
교회는 수성(守城)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세상으로 침투하고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세상 물이 들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 자녀들을 세상에 파송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까”를 고민하고, 이를 준비해야 합니다. 교회가 가두어 놓고 보호한다고 보호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희망인 교회가 그런 자세를 취해서는 교회가 될 수 없고, 그런 교회는 스스로 도태하기 마련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을 때 십대 초반이었고, 요셉은 17세, 다니엘과 세 친구도 10대 후반에, 에스더도 10대 후반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쓰임 받았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잡을 때에도 10대 후반의 소년이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일어난 미국의 선교운동의 주역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었습니다. 요즘 교회는 청소년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무엘은 10살도 되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일평생 한 마디 말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요, 기도하다가 쉬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세계 선교 운동에 헌신한 분들은 대부분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은혜 받고 헌신한 분들이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2학년 때에 거듭나고, 3학년 때 기도 부흥을 경험하면서 받은 은혜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군으로 살고 있습니다.
유초등부 중고등부 심지어 대학생들의 수련회가 놀이 중심으로 많이 변질이 되었습니다만 80년대에 수련회는 눈물 콧물 흘리며 회개하고, 성령의 불을 받고, 일생을 주님께 헌신하는 부흥회였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에 경험했던 기도부흥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매우 정상적인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신앙 체험을 “어린 것이 무엇을 아나?”할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에 회개와 구원의 확신과 성령세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중고등부와 유초등부가 수년 동안 수련회 때마다 눈물의 회개와 성령체험과 치유를 경험케 하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이때에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으로 확정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을 체험할 때 갖게 됩니다. 한국의 이기용 목사님께서 매년 청소년 연합 집회를 인도하면서 “청소년들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광고한 것을 보았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부모세대보다 더 시험과 유혹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더 성령의 능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세상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품어서 변화시키는 넉넉함을 얻게 됩니다. 진리를 포기하면서 화합하는 것은 타락이지 포용이 아님을 사랑과 섬김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 청소년에게 가장 큰 희망을 거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기독 청소년들이 바로 희망입니다. 주여, 청소년들에게 부흥을 주시옵소서. 아멘! 아멘! 아멘!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