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치욕의 십자가는 치유의 십자가!

황의정 목사 0 1,659 2018.05.04 10:13

       사람이 만든 사형제도 중에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한 방법이 십자가 처형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사형제도인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언할 때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방법입니다. 십자가형은 우선 가장 길고 긴 죽음의 행진입니다. 사형수로 판결이 나면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없습니다. 맘껏 조롱하고 모욕하고 괴롭힙니다. 먼저 6갈래로 만들어진 채찍, 그 끝마다 쇠갈고리가 달린 채찍으로 120대를 때립니다.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피를 많이 흘려 많은 죄수들은 이 단계에서 죽어버립니다. 어차피 죽을 죄인이니까 언제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겨우 이 단계를 벗어나 목숨이 붙어있으면 십자가의 가로 나무를 어깨에 메고 형집행장으로 올라갑니다. 이미 낙심(落心)하였고, 절망(絶望)하여 심적으로도 쇠진했기에 십자가 가로 나무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넘어지면서 비틀거리면서 겨우 목적지에 도달하면 옷을 벗겨 나눠가집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손과 발을 못 박아 세웁니다. 못은 1.5cm 정도의 굵기에 약 17cm 길이의 대못입니다. 장정들의 체중을 지탱할만한 크기입니다. 이 십자가에 달려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립니다. 두 팔에 매달리면 가슴이 조여와 숨이 차고, 발에 체중을 실으면 발에 고통이 너무 크고, 다시 팔에 매달리면 두 손목의 통증과 숨이 가쁘고. . . 대부분의 죄수는 질식하여 죽게 됩니다. 모진 목숨이 때로는 10일까지도 간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온갖 수모와 멸시와 조롱을 당합니다. 무력으로 통치하던 로마 시대에 십자가 처형은 끊일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기록한 말씀을 묵상하던 윌리엄 바클레이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고난은 이상하게도 모든 고통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과 혼과 육체의 어떤 고통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2. 배반을 당하여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손에 팔립니다. 친구들의 배반에 마음이 무너지고 깨어지는 아픔입니다. 3. 죽이기로 결안 하였습니다. 불법과 불의의 판결로 인한 고통입니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4. 로마인들에 의하여 능욕을 당합니다. 수치심과 고의적인 모욕을 당합니다. 5. 채찍에 맞으십니다. 로마인의 채찍에 견줄만한 고문은 세상에 없습니다. 육체의 극심한 고통을 당하십니다. 6. 마지막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집니다. 궁극적인 죽음의 고통을 보십니다. 7. 예수님께서 마치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모아서 스스로 겪으시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대속(代贖)의 죽음이요,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도 대속의 고난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겪는 모든 문제, 모든 고통, 모든 슬픔, 모든 모욕, 모든 거절과 잊혀짐까지. . .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든 아픔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철저하게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이 은혜를 누리시나요?


          아담의 후예인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선악과를 따먹은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 곧 영적인 죽음을 낳았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과의 단절을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 치욕의 십자가로 생명을 얻으셨나요?


          혼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성적으로 왜곡된 지식과 논리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의지적으로 자기의 길을 고집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버립니다. 책임전가하기가 주특기가 되었습니다. 감정이 상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무감각하고, 사랑을 못하고, 슬픔과 기쁨과 분노와 즐거움을 정당하게 느끼지 못합니다. 감정이 상하고, 이성이 마비되고, 결국 의지가 꺾인 인간은 인격적인 모습을 벗어나 비이성적이고, 천당과 지옥을 순식간에 왕래하는 감정의 기복으로 시한폭탄같이 불안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의지박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긴 여정에서 수없이 많은 능욕을 철저하게 당하신 것은 우리의 상한 감정과 마비된 이성과 꺾인 의지를 치유하기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이 치욕의 십자가로 마음이 치유되었나요?


          원래 에덴에는 질병이 없었습니다. 죄와 함께 온갖 질병이 들어왔습니다. 결국 한 번 죽는 것은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사고로 죽는 사람도 있지만 절대 다수는 질병으로 죽습니다. 예수님의 채찍은 바로 우리의 질병을 위해서 받으신 것입니다. 머리의 가시 면류관, 손과 발에 박힌 대못과 옆구리의 창은 우리 몸의 모든 질병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 치른 대가였습니다. 이 치욕의 십자가로 건강을 누리고 사십니까? 또 병들었을 때에는 그 은혜로 고침을 받으며 사시나요?


          타락이후에 노동은 고통스럽고 징벌적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원래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가꾸는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모든 양식이 풍성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마에 땀이 나야 겨우 먹고 살며, 저주받은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는 대가였습니다. 무시무시한 형틀이 아름답고 경건한 사람들의 목걸이가 되었습니다. 절망의 십자가가 희망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치욕의 십자가는 치유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 이 목회서신은 2011년 고난 주일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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