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교황 프란체스코의 도전(Challenge)

황의정 목사 0 1,654 2018.05.04 09:42

          상한 마음을 부여안고 몸부림치는 동포들에게 교황 프란체스코의 방한으로 큰 위로가 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에 희망을 갖게 하는 신선한 바람이 한반도를 휩쓸고 있습니다. 나라가 감싸주지 않아서 철철 피 흘리는 상처를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손으로 만져주는 모습에 감동합니다. 교황의 손을 잡고 머리를 조아리는, 딸을 잃고 34일째 금식으로 초췌해진 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는 울컥했습니다. 교황으로 취임한 이래 파격적인 서민적인 행보는 이미 전 세계인의 마음에 큰 물결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종교인으로서 이렇게 파장을 일으키며 존경을 받는 분이 있다는 것이 큰 도전입니다. 교황의 미소와 따듯한 손과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 생각이 깊었습니다. 온 세상이 보고 싶어 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가까이 하고, 없는 자들을 돌보고 섬기며, 화려하고 장엄함으로 만들어내는 권위가 아니라 겸손과 소탈함과 친밀함으로 주어지는 권위가 참 아름답습니다.


           이 모습이 보배를 담은 질그룻인가 아니면 쓴 약을 먹기 쉽게 만든 당의정(糖衣錠)인지를 생각하며 당황스럽고 또 안타깝고, 심히 고민이 깊었습니다. 이 글은 담임목사로서 우리 성도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쓰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존경하는 교황을 비난하거나 천주교회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사실을 밝혀줌으로써 바로 알고 바로 믿도록 돕고자 하는 목자의 마음뿐입니다. 또 우리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고, 또 우리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재 헌신하게 하고자함입니다.


           교황께서 행하신 큰 공개적인 미사가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모승천축일미사”를 집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124명의 순교자 시복식”을 거행한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향한 존경과 칭송이 남다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신 분입니다. 우리들도 이 점은 동일하게 인정하고, 신앙과 순종의 모범으로 삼고 존경합니다. 하지만 천주교회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뒤에도 수절하고 살았으며,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동생들은 친동생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요셉은 남편으로 산 것이 아니고 단지 보호자로 살았습니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청을 잘 들어주시기 때문에 기도 응답이 속히 온다고 가르칩니다. 왜 천구교인들은 마리아에게 기도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자녀들을 용서하시는 것과 같다”고 미국 신부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를 너무 높여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 세워놓았습니다. 성경적 입장에서 보면 성모마리아 승천은 근거가 없습니다. 천주교회에서도 최근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교리로 확정한 내용입니다.


           시복식이란 것은 순교자들을 복자(福者)로 세우는 것입니다. 복자 다음은 성자(聖者)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그 분들의 신앙과 삶을 기리는 것을 넘어섭니다. 천주교회는 연옥을 믿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으면 연옥에 가서 남은 죄 값을 치른 다음에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자들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옥의 불구덩이에서 기간을 줄일 수 있다면 최대한 줄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16세기에 성 베드로 성전을 건축하면서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를 판매한 것도 이 목적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 기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성자들에게 기도하여 그들의 공덕(功德)을 힘입는 것입니다. 천주교회 장례 예배에 가면 신자들이 와서 반복되는 긴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성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망자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면 모두 한 목소리로 따라합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성자의 공덕을 나누어 주시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구원은 믿음과 선행으로 됩니다. 구원에 이르는 사닥다리라고 믿고 가르칩니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 성자에게 공덕을 비는 것 등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우리의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천주교회의 십계명은 우리가 믿는 십계명과 다릅니다. 천주교인들이 사용하는 공동번역 성경에는 우리가 믿는 내용이 그대로 나와 있지만 천주교회에서 발행한 성도들을 위한 책에는 2계명이 없습니다. 우상을 만들거나 절하여 섬기지 말라는 것이 삭제되고, 탐내지 말라는 10계명을 둘로 나눠서 10계명으로 가르칩니다. 성당에 가면 입구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성자 상(像)을 만들어서 진열해놓았습니다. 교황 프란테스코의 공개적인 2개의 미사가 성경적 진리와 거리가 멀고, 천주교회의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우상 숭배에 관한 행사라는 것이 염려가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즉각 그가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결정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장례 예식이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고인의 모범을 본받아 삶과 신앙의 도전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장례절차가 고인의 연옥에서의 시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장례식이 고인을 위해서 중요합니다.


           아무튼 교황 프란체스코의 도전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진리를 가르치는지 거짓을 가르치는지 잘 모릅니다. 오직 우리의 삶을 보고 판단합니다. 낮은 자리,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고아와 과부, 어린이와 여자 편에 서면 그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따르고, 그가 믿고 가르치는 것을 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가 강한 자, 가진 자, 높은 자 편에 서고, 낮고 천한 자를 외면하면 그가 가르치는 진리까지도 외면합니다. 이것이 부해진 교회, 높아진 교회, 소외된 자들과 멀어진 교회가 세상의 버림을 받고, 비난과 조롱을 받는 이유입니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닮았는데 예수님의 진리와 거리가 멉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진리는 간직하고 믿고 전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의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진 진리보다 사는 모습이 듣는 이의 귀를 열고, 마음을 연다는 것입니다.


           질그릇! 우리가 벗어버리고 싶은 질그릇이 사실은 복이고 능력이고 비결입니다. 화려하고 높은 자리! 우리가 사모하고 추구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독이요, 악이요, 사망입니다. 주여, 낮은 자리에 임하게 하소서! 이 도전 앞에 겸손하게 “아멘!”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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