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부활 후 40일 행적

황의정 목사 0 11,774 2018.05.03 09:13

검찰에서 죄인의 행적을 추적할 때에는 돈을 주고받은 것을 집중적으로 수사하는 것 같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를 뇌물수수죄로 고발한 검찰이 고심하는 것은 돈을 받은 증거물을 찾지 못하고, 또 그 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전혀 증명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죄형 법정주의에 따라서 법정에서 판결을 받기 전에는 누구나 무죄이지만 언론에 혐의사실을 유포함으로 이미 죄인으로 각인시키는 것이 문제지요. 증거재판주의 따라 검찰은 증거를 법정에 제출해야 하는데 아무 물증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검찰이 평민도 아니고 야당 정치의 거물 전임 국무총리의 혐의를 샅샅이 뒤져도 이정도 밖에 못 찾아냈다면 오히려 한 전 총리가 청백리임을 만천하에 증명하는 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의 부활을 막으려는 발버둥이 허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엉뚱한 비약이긴 하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신 사실을 들어 신성모독으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 것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정말 억울하게 죽으셨습니다. 너무도 비참한 죽음이요 수치스런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가 승리했습니다. 진리가 이겼습니다. 사흘 만에 무덤을 덮고 있던 무거운 돌을 밀치고 살아나셨습니다. 체포와 구금과 심문과 재판, 십자가와 부활로 이어진 며칠 사이에 3년 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조직과 인맥이 다 무너졌지요. 이를 재건하지 않으면 도저히 하나님의 사업을 지속할 수가 없게 망가졌습니다. 승천하기 전 40일 동안의 행적은 그래서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을 안 하셨고 무엇을 하셨나를 보겠습니다.

첫째, 조직을 재건하려면 우선 자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금을 모으려고 재력가를 찾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애초에 예수님은 자금으로 조직을 만들지도 유지하지도 않으셨으니까 새삼스레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 병자를 고치거나 귀신을 쫓거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능력이 줄어든 것이 아닐텐데 말입니다. 주님은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을 생각하고 계셨음이 분명합니다. 셋째, 대중을 위한 사역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천수만 명을 모아놓고 여론몰이를 하여 부활을 과시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여론재판으로 정죄하여 축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군중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군중심리를 선동하여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를 미친 듯이 외쳤던 바로 그들의 입으로 대제사장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라고 외치게 만들었으면 참 통쾌하기도 했을텐데 예수님은 그런 천박한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나 빌라도를 찾지 않았습니다. 채찍을 휘둘려 살점을 찢어내며 희희낙락거리던 군인들도 찾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을 드러내시며 손에 못 자국을 보여주셨다면 기절초풍을 했을 것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전도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점이 제일 궁금합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에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셨는데 흩어졌던 저들을 돌아오게 하고, 불신자들에게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수십만 명이 일시에 믿었음직한 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센세이셔널 한 방법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1) 무덤에 찾아온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 자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러 오셨습니다. 지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천국에 하나님 아버지께 인사도 드리기 전에 무덤에서 홀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마리아야! 하셨습니다. 2) 두려워 문을 꼭꼭 닫고 틀어박힌 제자들 10명의 초라한 모임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 3) 낙심하고 실망한 두 제자를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만나주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시작한 일을 포기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도록 불러주셨습니다. 4) 의심 많은 도마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5) 큰소리로, 결코 예수님을 배반하지도 떠나지도 않을 것이며, 죽는 데까지 함께 가겠다던 베드로는 세 번이나 저주하고 맹세하며 모른다고 부인하였었지요.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던 제자가 죄책감에 빠져있으니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 사랑의 고백을 이끌어내시면서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새롭게 시작하도록 회복시켜주셨습니다. 6) 제자들에게 갈릴리 바닷가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처음 제자들을 불러 따르게 하셨던 그 추억의 장소, 역사적 장소에서 새로 시작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지난번에는 훈련하려고 부르셨지만 이제는 파송하려고 그 곳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상처받은 마음, 낙심한 마음, 두려움에 가득한 마음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 자신의 죽음으로 절망하고 두려움에 휩싸이고 불안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제자들 만나기에 금쪽같은 40일을 보내셨습니다. 치유 받아야 쓰임 받습니다. 상처를 안고는 천국 건설의 일군으로 부족합니다. 훈련받은 제자들을 치유하고 회복하여 땅 끝까지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예수님의 전략을 봅니다. 40일의 행적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을 치유하여 세우시고,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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