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음지(陰地)의 사람 양지(陽地)의 사람

황의정 목사 0 11,483 2018.05.03 08:42

어려서 동네 입구의 큰 기와집 처마 밑에 올망졸망 앉아서 놀던 기억이 납니다. 햇볕이 드는 따듯한 곳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방학 동안에는 늘 그 곳에서 놀았습니다. 늦게 아침을 먹고 나와서 이른 저녁을 먹을 때까지 동네 아이들이 모두 그 곳에서 놀았습니다. 연도 그 양지바른 곳에서 날렸습니다. 다마(구슬)치기도 그 양지에서 했습니다. 참 따뜻했지요. 이른 봄 산에 가서도 항상 양지 편에서 나무를 했습니다. 눈이 먼저 녹기 때문이지요. 파릇파릇한 나물을 캘 때에도 항상 양지 편에서였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양지에서부터 새싹이 돋아나니까요. 

인생에도 음지와 양지가 있습니다. 빈민촌에서 태어나 평생 가난을 달고 살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약과 도박과 술과 싸움으로 나날의 음식을 삼다가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불행인지 행복인지 구분이나 하고 사나 싶지요. 가난과 저주를 대물림하면서 온 세상을 향하여 저주의 독설을 뿜어내며 살다가 그렇게 스러져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음지에서 나서 음지에서 살다가 음지에서 죽어가는 음지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음지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음지에서 죽으라는 운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세계적인 갑부도 됩니다. 질병과 장애를 타고 났어도 극복하여 큰 인물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지에서 양지로 옮긴 사람들이지요. 가난한 과일 행상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못 배운 사람이 수억원을 장학금으로 남기면서 자기처럼 못 배운 한이 맺힌 사람들에게 주라고 유언하고 죽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한 때 한국에서 잘 팔린 책 중에 꼬방동네 사람들이란 책이 있었습니다. 창녀촌 이야기였습니다. 기둥서방-창녀의 남편-을 하던 이동철이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저자는 후에 예수님 믿고 장로가 되어 빈민운동을 했고, 국회의원까지 했지요. 음지의 사람이 양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행한 것은 양지에서 태어나 양지에서 자라면서 음지의 사람으로 전락한 경우입니다. 훌륭한 장로님 권사님들 중에 저를 찾아와서 하소연하신 분이 몇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마약에 빠져서 폐인처럼 집에 칩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혼을 결심하고 저를 찾아와서 신자인데 이혼을 해도 되느냐고 슬픈 비둘기 눈을 하고 묻는 착한 아내들을 종종 만납니다. 남편이 도박에 빠져서 패가망신을 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돈을 빌려 이제는 얼굴 들고 살 수가 없답니다. 자식들 장래를 생각하면 이제 헤어져야겠는데 신앙 양심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음지에서 나서 음지에서 죽는 것이 불행입니다. 양지에서 나서 음지에서 죽는 것은 불행을 넘어 비극입니다. 인생은 음지에서 났어도 양지를 바라고 사는 존재 아닌가요? 

지난 주간에 몽골 박정희 선교사님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몽골 사람들을 사랑하여 홀로 사는 여자 목사님이 눈보라 속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떠올라 한 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동상으로 고생하고, 비타민이 무슨 큰 보약이나 되는 양 비타민을 성탄절 선물로 받고 싶다고 기도했답니다. 아, 몽골 사람들이 음지의 사람들이구나! 가난해서 음지가 아니구나! 병들어서 음지가 아니구나! 하나님을 몰라서 음지구나!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섬긴 교회마다 일꾼을 세우는 탁월한 여전도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목사 안수를 받고 보내주는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몽골에 선교사로 가셨습니다. 구구절절 논리적으로 나이나 건강이나 혼자 사는 것이나 무엇 하나 선교사로 나가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저의 간곡한 편지를 읽고도 가셨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니 어쩌겠습니까? 영적인 암흑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몽골 땅에 몰려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음지 중에 음지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따듯한 햇빛을 비추어 양지 사람을 만들어야겠지요. 편지에 보니 양지 사람이 많이 되고 있더군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12). 천국 양지에서 이 땅 죄인들이 사는 음지에 오신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양지중의 양지로 옮기시려고 내려오셨지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불신과 죄와 사망의 음지 사람들을 인도하라고 우리를 여기저기로 보내십니다. 우리는 음지사람을 양지사람 만드는 사명자인 것입니다. 영원한 양지사람을 만드는 위대한 사명자 말입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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