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웬 원불교 타령?

황의정 목사 0 10,689 2018.05.03 08:37

후배 목사님의 담임목사 취임 예배에 갔었습니다. 보통 취임 예배에 가면 축사와 권면이라는 순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축사는 담임목사로 취임하는 목사님께, 또 좋은 목사님을 모시게 된 교회에 축하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권면은 담임목사로서 승리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지혜를 주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는 비결을 나누면서 당부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행사가 자주 있지는 않지만 순서를 맡은 목사님들마다 짧은 5-7분 동안에 지혜가 번득이는 말씀으로 자리는 빛내줍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오신 조목사님께서 권면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먼저 담임으로 취임하시는 목사님을 일어나라고 하시더니 목사님은 설교하시고 가르치신 대로 살도록 노력하시겠습니까?하고 물으십니다. 대 선배시고 또 은사가 되시는 목사님의 말씀이 아니라도 누가 이 질문에 글쎄요! 또는 아니요! 하겠습니까? 씩씩한 네! 대답을 들으시고는 앉으시라고 하시더니 온 성도들을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지금부터 내가 드리는 말씀에 아멘하시는 분만 자리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훌륭한 목사님을 모시고 좋은 교회를 만들려면 원불교를 버려야 합니다! 순간 왠 원불교 타령?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금방 깨달음이 왔습니다. 기가 막힌 말이다 싶어 무릎을 탁 쳤습니다. 원불교는 원망(怨望)과 불평(不平)과 교만(驕慢)이었습니다. 목사님의 권면의 말씀을 들어보니 제 추측이 딱 맞았습니다. 

원망이란 (남이 내게 한 일을) 억울하게 또는 못마땅하게 여겨 탓하거나 분하게 여겨 미워함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원망의 챔피언이었습니다. 10가지 재앙을 내려 이집트를 징벌하고 해방되어 나온 이스라엘입니다. 홍해를 갈라 맨 땅으로 건너게 하시면서 추적하던 이집트 마지막 정예부대를 수장시켜버리고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그런데 마실 물이 없다, 고기와 채소가 없다, 길이 거칠어서 걷기 힘들다, 자녀들이 가나안 땅에도 못 들어가 여기 광야에서 죽는 것이 아니냐? 하면서 끊임없이 원망하였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 원망이 불평으로 이어집니다. 차라리 이집트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거기서는 파와 마늘과 부추와 채소가 풍성했었는데. . . 불평을 늘어놓을 때에 그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돌아보고 와서 보고할 때에 다수결로 10명의 의견에 온 백성들이 울며불며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결과는 10명이 저주를 받아서 즉사하고, 20세 이상의 남자들은 40년 광야 생활 중에 다 죽어 넘어졌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깊은 뿌리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성경에 원망은 40번, 불평은 4번 나옵니다. 교만은 자그마치 127번이나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때에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민21:5)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마다 내려주시는 만나를 하찮은 것으로 여겨 싫어했습니다. 교만은 자기가 받는 대접을 과소평가합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보내주시는 만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다니요. 교만의 극치가 아닙니까? 하나님은 불 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하찮게 여긴 대가는 불 뱀에 물려 죽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로서 원불교(怨不驕)를 멀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기가 막힌 말씀에 탄복을 하면서 생각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비단 교회에서만인가? 먼저 가정에서는 어떤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과 교만을 버린다면 부부가 시베리아 벌판의 찬바람 가운데 살겠는가? 부모와 자녀가 원불교를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직장에서도 이 원불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손해가 납니까? 작은 원망과 불평으로 시작된 것이 수많은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행복을 파랑새처럼 날려버리고, 친구가 원수로, 그립던 얼굴이 꼴도 보기 싫고 꿈에 볼까 두려운 얼굴로 변하지 않습니까?

원망의 자리에는 고마움을 심어야겠습니다. 범사에 감지덕지(感之德之)해야지요. 과분하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평대신 인정과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면 어떨까요? 멀어졌던 친구도 돌아올 것입니다. 그 따뜻한 말 한 마디에 굶주린 영혼들이 주변에 몰려들지 않을까요? 교만하면 하나님도 원수로 여겨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사람은 이 땅에서도 저 천국에서도 높이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원불교 추방운동을 한 판 벌여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주 예수님, 제 마음과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세요. 원불교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고, 그 자리에 감사와 인정과 칭찬, 그리고 겸손을 가득 채워주세요!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많이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멘--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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