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살리는 말, 죽이는 말

황의정 목사 0 11,181 2018.05.03 08:36

말을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학자같이 알아듣고 학자 같이 말을 하여 위로와 격려와 세우는 말, 치유하고 회복하는 말만을 하고 살아도 부족한 삶이지요. 그런데 말로 저주하고 정죄하고 죽이고 멸망시킨다는 생각은 무섭습니다. 말로 죄를 짓고 살던 세월은 지나간 세월만으로도 족합니다. 김진홍 목사님의 아침묵상 편지를 읽고 1주일 내내 이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한 교회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결핵으로 죽어가는 오빠의 모습을 보다 못한 한 가난한 누이가 미군에게 몸을 팔았다. 그래서 오빠의 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오빠의 건강은 많이 회복 되어 갔다. 어느 날 한 교인이 이 사실을 알고는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은 오빠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충격을 받은 오빠는 ‘동생이 몸을 팔은 대가로 병이 나았다니. . .’ 교회도 나오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몸까지 팔아 오빠를 살렸는데 이제 오빠가 없는 세상 살 가치가 있겠는가 하고는 누이도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장례식 날 두 시신을 앞에 두고는 목사가 울면서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너는 세상에 있을 때에 양떼를 얼마나 돌보았느냐?”고 나에게 물으시면 “하나님 용서하소서. 저는 양은 한 마리도 없고 오로지 이리떼만 있는 교회에서 이리떼만 먹이다가 왔습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말을 만들어 애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이리떼이다. 이리떼가 활개를 치는 교회나 사회에서는 선량한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한 남편이 목사에게 말하였다.

“목사님 성경에 예수께서 벙어리를 고치신 기적이 나오잖습니까? 그런데 저는 벙어리가 말하는 것은 큰 기적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정말 기적은 말 많은 수다쟁이 내 마누라가 잠잠케 하여 주시는 것, 그것이 정말 기적일 것입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 교인은 왜 소문을 퍼뜨렸을까? 이런 결과가 오기를 바라고 그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선 동생의 행동이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지 그른지를 말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신령한 생각으로 기도를 해서 병을 고쳐야지 그런 죄악된 방법으로 하면 되냐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빠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고 이런 비극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까지는 전혀 예상을 못하고 너무도 황당한 이야기라서, 너무도 충격이 되어서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닌데 싶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 사람을 정죄하지 못하겠습니다.

교회에서는 본의 아니게 말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 목사님께 상담을 하면서 은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그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이름도 바꾸고 시기와 장소도 바꾸지만 당사자는 자기 이야기임을 알기에, 또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은 누구 이야긴지 다 알게 되어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2) 성도의 심각한 문제를 알게 된 목회자가 도저히 혼자 기도해서는 부족할 것 같아서 기도 많이 하는 권사님이나 집사님에게 중보를 부탁합니다. 정말 힘써서 기도해 주는 동역자가 있어서 목회자는 큰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중보기도자가 목사님과 자신의 관계나 자신의 신령함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비밀을 누설합니다. 3) 구역모임이나 중보기도 시간에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를 부탁했는데 함께 기도하신 분들이 말을 퍼뜨리게 되어 상처를 받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해 주었는데, 그래서 고마웠는데, 어느 날 보니 자기 이야기를 성도들이 수군수군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성도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이 이를 알아챕니다. 흔히 본인이 문제를 문제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말해주어도 사이만 나빠지고 개선이 안 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서로서로 이 문제 해결책을 도모한다고 상의하다보면 흉을 보는 것이 되고, 정죄를 하게 되고, 이 문제를 모르던 사람들까지 알게 되면서 그 성도를 왕따 시키는 경우가 생깁니다. 5)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를 친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억울한 마음에 말한 것인데 들은 사람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다른 사람에게 상의(?)합니다. 본인에게 확인을 하지 않고 말이 돌고 돌아서 정작 본인만 빼고 온 교인들이 알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처음부터 오해였던 것이 드러납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나쁜 사람이 됩니다. 사실이 밝혀진 다음에도 사람들의 뇌리에는 그 나쁜 이미지가 개선이 잘 되질 않습니다. 사람 하나 바보 만들기 쉽지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사랑은 나쁜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쁘게 상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최선의 경우를 생각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배려합니다. 우리의 말이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경우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짐작하고 추측하여 나쁜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이 아닙니다. 본인에게 확인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남의 일에 궁금하고 열심을 내는 것은 불량한 호기심 때문입니다. 이 호기심을 자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믿고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내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서만 부르짖어 기도할 일입니다. 살리는 말만 해야지요. 샘이 쓴 물과 단 물을 동시에 낼 수 없듯이 한 입에서 어찌 주님 찬양과 남의 허물이 나오겠어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고 하셨습니다. 명심할 일입니다. 죽이는 말은 노멘이고 살리는 말은 아멘입니다. 할렐루야!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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