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어느 북한 병사의 신앙

황의정 목사 0 10,201 2018.05.03 08:33

6.25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는 참으로 비극적인 전쟁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3년 1개월만에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하였습니다. 참전국의 군인들을 포함하여 250만명이 죽고, 10만명의 고아, 20만 명의 전쟁미망인이 발생했으며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한 살상전이었습니다. 그 중에 미군 병사가 약 54,000명이 전사했습니다. 금년은 전쟁발발 59주년이고, 휴전 56년이 됩니다. 

한 미국 처녀의 이야기입니다. 1950년경에 교제하던 청년이 군에 입대하여 한국의 6.25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몇 번의 편지가 오고갔는데 그만 편지가 뚝 끊겼습니다. 생사를 알지 못하여 몹시 궁금했는데 한 2년 후에 갑자기 그 청년이 돌아왔습니다. 살아서 돌아온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왜 그 동안 소식이 전혀 없었느냐고 묻지 않을 수가 있나요?

미군 병사가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그만 공산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줄에 묶여서 끌려갑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공포와 절망에 빠졌던 미군 청년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젊은이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다 흥얼흥얼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북한 군인이 자기를 줄에서 풀어 대열에서 빼어내더니 한 쪽으로 끌고 갔습니다. 두 눈을 마주보고 반짝이면서 손짓을 합니다. 한 손으로 미군의 가슴을 짚더니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합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 것 같았습니다. 너 예수님 믿니? 그 뜻으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한 손으로 자기 가슴에 댄 뒤에 또 두 손을 모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도 예수님 믿어! 하는 소리지요. 그리고는 미군 병사가 부르던 찬송을 알아듣지 못할 말(한국말)로 한 두 소절을 부릅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덥석 두 손을 잡았습니다. 공산군은 한 쪽을 가리키면서 어서 가라는 손짓을 합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달렸습니다. 얼마 못 가서 함께 잡혀가던 미군 포로의 수만큼의 총성을 들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미군에 돌아오게 된 이 병사는 더 이상 공산당을 대적하여 전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형제가 있는데, 그 중에 한 형제가 나를 살려주었는데 어떻게 그들을 향하여 총을 쏠 수가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내 형제를 배반할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집총거부(執銃拒否)와 불복종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징역을 살다가 풀려난 것입니다.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하면 전쟁 중에 핀 아름다운 한 송이 꽃 같은 이야기입니다. 서로 살기 위해서 적군을 죽여야 하는 전쟁터에서,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공산군과 미군, 한국인과 백인 사이에서 신앙으로 확인된 형제애가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비록 원수 미군이지만 어찌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를 죽음으로 내몰수가 있습니까? 비록 공산군이지만 형제를 어찌 죽일 수가 있습니까? 더욱이 먼저 나를 살려준 형제를 향하여 어찌 총을 들겠습니까? 집총거부하고 불복종으로 전시(戰時)에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감옥에 가고 총살형을 당할망정 그리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흔히 신앙에는 국경이 없어도 신앙인에게는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더 큰 명분이 더 작은 명분을 뛰어넘는 것이 상식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맺어진 형제관계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피보다 훨씬 진한 것입니다. 육친으로 인한 혈연(血緣)은 지상에서의 인연이지만 신앙으로 맺어진 예수 혈연은 영원의 인연입니다. 영원한 형제입니다. 북한 병사의 신앙과 미군 병사의 신앙이 위대해 보입니다. 나라면 과연 이렇게 바르게 행동할 수가 있었을까? 생각하며 숙연해집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정죄하거나 비난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단순하게 묻는 것입니다.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보고 어그러지고 삐뚤어진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 즉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자복할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으로 변하기 위하여 자극을 드리고 싶어서 묻습니다. 믿음으로 사시나요? 개인적인 삶에서 믿음은 어떻게 나를 이끌어가나요? 혼자 있을 때의 나의 모습이 진정한 나의 모습입니다. 사회생활에서 대인관계에서 나의 믿음은 어떻게 모양과 색깔과 향기를 만들어내나요?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내 믿음은 어디에 있나요? 

조국이 많이 어지럽습니다. 갈팡질팡 우왕좌왕합니다. 서로 말의 홍수를 쏟아내지만 행동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와 입장을 같이하면 동지요 달리하면 대적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무엇을 하나 좀 지나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의지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감정에 쉽게 동요되곤 합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이 있습니다. 이 신앙이 나로 생각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게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라 하여도 믿음으로 엮어지는 위대한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탄식하신 예수님의 마음은 내가 재림할 때에 세상에 믿음으로 사는 내 백성들이 많아야 할 텐데 하는 바로 그 간절한 소원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나라도 사랑하고, 민족도 사랑하고, 가족과 성도를 서로 사랑하는 믿음을 보여주세요. 정치인들과 지도자들을 위해서 신실하게 중보함으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면서 인정과 칭찬으로 격려하는 믿음을 보여주세요. 무엇보다 우선하여 가정과 교회에서, 작은 일부터, 말 한 마디마디부터 믿음을 보여주세요. 북한 병사와 미군 병사처럼. . .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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