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White Christmas!!!

황의정 목사 0 11,060 2018.05.03 08:24

어린 시절에 첩첩산중에서 살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말에 도청소재지로 이사하여 전학을 했지요. 첫 시간에 들어오신 국어선생님은 얼굴도 희고 키도 크고 잘 생기셨습니다. 출석을 부르시다가 키가 작고 얼굴은 동그랗고 새까만 촌놈이 새로 왔잖아요? 대뜸 하시는 말씀이 황의정, 너 토끼하고 발을 몇 번이나 맞췄냐?였습니다. 아이들이 와아! 하고 웃었습니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안 세어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눈이 쏟아져 산천을 하얗게 덮던 산골이었습니다. 왠지 고립된 느낌, 답답한 느낌,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불쌍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읽을거리도 없고, 놀러 갈 곳도 없고, 다른 아이들처럼 구슬치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 . 면 소재지에 살면서 공부 좀 한다던 아이가 산을 개간하시겠다는 부모님을 따라 산골로 이사가보니 또래 아이들 중에 공부에 흥미있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예 100호 중에 저희 집과 정선생님 댁 아이들은 그냥 공부 잘하는 아이들로 불렸으니까요. 

아침에 버스가 한 번 내려가고, 저녁 늦게 한 번 올라가면 하루 종일 자동차 구경도 못하던 산골 신작로 옆에 저희 동네가 있었습니다. 앞에는 큰 산이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 산은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신비했습니다. 머루와 다래가 더 크고 높이 달려있었습니다. 산비탈은 더 가파르고 하늘이 안 보이게 숲이 우거져있었으니까요. 그 산은 그렇게 계속 깊어만 가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한 번 저 산을 넘어가보고 싶다. . . 이런 진취적인 생각은 못하고, 버스타고 저 산을 돌아가면 큰 도시가 나오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아직도 그 산이 히말라야보다도 훨씬 높습니다. 

성탄절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의 성탄절 기억이 없습니다. 불교를 극진히 믿으셨던 어머님께 추운 겨울 성탄절 준비한다고 밤마다 10길을 걸어 교회 다니시던 누님이 머리끄덩이를 잡히는 것을 보았지요. 하지만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상쾌한 기분은 매년 맛보았습니다. 꽁꽁 언 논에서 썰매를 타다가 눈이 오면 이리저리 길을 내고 곳곳에 교통순경을 세우고, 손으로 신호를 하면서 휙휙 휘달리곤 했지요. 손바닥만 한 논에서 온 천지를 달리는 기분. . . 그 때, 참 행복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성탄절에 눈이 별로 오지 않았습니다. 찬바람이 강가에 휘휘 불어대고 몹시 추운 성탄절 이브에 노래도 하고, 연극도 했습니다. 행사도 즐거웠지만 그 다음 일로 맘이 둥둥 뜨곤했습니다. 밤이 새도록 교육관에서 선물교환이네 게임이네 뭐네 하면서 놀다가 새벽 송을 다니는 것입니다. 큰 자루 하나 둘러메고 남학생 여학생이 어울려서 선생님과 함께 성도들의 집을 다니면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면 자다가 깬 집사님들이 과자 보따리를 들고 나오십니다. Merry Christmas! 큰 소리로 외치고 넙죽 과자를 받아가지고 다음 집으로 갑니다. 매운 연기 나는 난로 주변에 웅크리고 앉아서 꽁꽁 언 몸을 녹이다가 졸다가 하다보면 어느새 성탄절 예배 시간입니다. 이런 와중에 어떤 분이 우리 교회 앞에 흔들흔들하며 서있더니 궁금한 듯이 이상하다는 듯이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교회도 크리스마스 쇠냐?

1977년 성탄, 서울에서 어린 나이에 담임전도사이던 시절입니다. 그 해에는 눈이 무척 많이 내려 온 천지가 하얗게 덮였습니다. 낮에 약간 녹았던 눈이 얼어붙고 또 눈이 쌓이니까 너무 미끄러워 모두가 조심조심 걷습니다. 바람 끝이 몹시 매서웠습니다. 두껍게 입고 칭칭 동여맸지만 살을 에는 찬바람은 여지없이 얼굴에 눈보라를 뿌리곤 했습니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새벽송을 돌았습니다. 남자마다 한 보따리씩 짊어질 만큼 선물도 푸짐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백미는 마지막의 박집사님댁이었습니다. 가까이 가자 벌써 떡국 냄새가 진동합니다. 노래는 부르는 둥 마는 둥 하고 우르로 몰려 들어갔습니다. 뜨끈뜨끈한 떡국, 예수님의 생일 떡국! 잊을 수가 없습니다. 흰 눈에 흰 떡국에. . . 가장 추억에 남는 저의 White Christmas!였습니다.

아기 예수 오시어 어지럽고 더러워진 세상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깜깜한 세상을 환하게 비추셨습니다. 흰 눈으로 천지를 덮듯이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덮으셨습니다. 내가 내 아들 예수를 보낸 것은 세상을 깨끗하게 하려는 뜻이란다! 하시면서 하나님은 흰 눈을 펑펑 쏟아부어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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