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어느 아버지의 믿음

황의정 목사 0 10,909 2018.05.03 08:22

어린 아이가 두 손에 사과를 하나씩 들고 앞에 있는 과자를 바라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립니다. 사과 하나를 놓고 과자를 집으면 되지만 사과 두 개를 포기할 수도 없고, 또 과자를 먹고 싶은데 손이 더 없던 것입니다. 종종 이런 갈등을 겪게 되지요? 이미 내 것이 된 것을 포기하기 싫으면서도 다른 것을 더 갖고 싶은 것입니다. 어린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도 이런 갈등은 우리 곁에 늘 있습니다. 

싸이판에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중국에서 온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두통으로 고생을 하던 자매는 싸이판에 올 때에 2년간 먹을 약을 한 가방 담아왔습니다. 친구에게 이끌리어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자가 되었습니다. 제자훈련을 열심히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 예배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년간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중국에서 가져온 약은 아직 절반도 못 먹었는데 말입니다. 기쁨으로 중국에 계신 아버님께 편지를 했습니다. 싸이판에서의 생활, 일요일이면 교회에 다니게 된 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딸이 된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만성 두통을 고쳐 주셨다고 썼습니다. 끝에는 조심스럽게 아버지와 어머니도 예수님 믿고 교회 다니시면 좋겠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편지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딸에게, 네가 교회에 나가고 예수님을 믿는다니 무척 기쁘구나. 네 할아버님은 지금은 없어진 예배당을 우리 동네에 지으셨던 분이다. 나도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다. 나라 형편이 어려워 네게 예수님을 소개하지 못했었는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아시고 너를 싸이판으로 부르셔서 구원하여주셨구나! 목사님께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주면 좋겠다!

편지를 보여주면서 자매가 말합니다. 목사님, 저희 아버지는 학교 선생이십니다. 성품이 훌륭하고 모범적이고 우수한 선생님이시라 벌써 교장 선생님이 되셔야 하는데 평생 평교사로 계십니다. 중국에서는 진급하고 고위직을 맡으려면 모두 당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사코 당원 되기를 싫어하시고 평교사로 고생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이번에 아버지 편지를 받고 깨달았습니다. 중국에서는 당원이 되려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나 모든 종교를 부인하고 맹세를 해야 합니다. 아무이게도 말을 안 하셨지만 믿음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당원이 되면 존경도 받고, 진급도 하고, 월급도 더 많이 받고,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거부하셨습니다. 참 신앙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어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중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선교사가 추방되었습니다. 교회는 점진적으로 폐쇄되었고, 마침내 문화혁명 기간에는 혹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신앙을 가족들에게조차 비밀로 해야만 했습니다. 서로 감시하고 밀고하게 하는 공산당식 정보망과 통치방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자매가 싸이판에 올 때는 종교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하여 외국에 노동력 수출을 시작하던 90년대 초였습니다. 

신앙은 포기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 위해서 모든 우상을 포기해야 합니다. 거룩하려면 세상의 쾌락과 모든 죄악된 습관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미움과 증오를 포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복수는 포기하고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왼 뺨을 맞으면 오른 뺨도 대줘야 하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야하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주어야 합니다. 영광을 받고자 하면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조롱을 당해야합니다. 성경은 심고 거둔다고 말합니다. . . .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 . (고전 15:42-44). 포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새벽 단잠을 포기하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신문과 드라마와 빈둥거리는 시간을 포기하면 성경도 읽고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습니다. 헌금도 더 드리고 싶고, 부모형제도 돕고 싶고, 구제도 하고 선교헌금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를 위한 지출을 과감하게 줄여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두 손에는 무엇이 들려있지요? 내려놓지 못하고 쩔쩔매는 어린아이의 얼굴에 내 얼굴이 겹쳐보이지는 않으시나요? 형제님, 자매님이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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