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성자되기 첫 걸음

황의정 목사 0 10,544 2018.05.03 07:37

다일 공동체를 세우신 최일도 목사님께서 다일 영성 생활 수련회를 인도하십니다. 한국에서는 10년을 매월 인도하셨고, 미국에서도 지부를 만들어 3년째인데 제가 지난달 6기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잘 짜인 프로그램에 철저한 준비, 매끄러운 진행과 독특한 훈련 방식 등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하나하나 프로그램을 해치우는 차원이 아니라 진지하게, 철학을 가지고 설명하고 진행할 때에 참 인상 깊었습니다.

성자되기 첫 걸음! 생활영성수련회 중의 한 활동입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할 것 같지요? 아니면 신비한 일이라든지요. 저는 이 설명을 들으면서 즉각적으로 떠오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수도사가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교황청 대사가 그 수도원으로 추기경의 빨간 모자를 가지고 임명장을 전하러 갔습니다. 추기경이 되는 수도사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황의 임명장과 함께 빨간 모자를 씌어주자 겸손하게 모자를 벗어서 옆에 있는 나무에 걸어놓고 하던 설거지를 계속했습니다. 과연 추기경이 될 만큼 겸손하시구나! 명예에 우쭐대지도 않고, 신분이 상승했으니 이런 천한 일은 이제 졸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요. 여기서 따온 말인지는 모릅니다. 바로 성자되기 첫 걸음은 설거지하기였습니다. 

저는 집에서 부엌 쓰레기통 비우기, 식수 길어 나르기를 합니다. 어느 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평생 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지요. 그래도 그득 쌓여있으면 애써 외면하면서도 속으로 투덜대던 바로 그 설거지는 선뜻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큰 맘 먹고 아내를 위해서(?) 설거지를 시작했는데 서툴러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런 일을 나눠 해야 가족이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그릇을 씻으려고 하지만 그렇게 즐겁고 기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것이 성자되기 첫걸음이라니요.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이 맞아! 하고 동의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 점심을 구역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봉사합니다. 시장보기, 요리하기, 배식에서 설거지까지 몽땅 한 구역에서 합니다. 물론 음식값도 구역식구들이 십시일반으로 담당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보니까 시장보기와 요리하기 그리고 배식까지를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가끔 힘들다고 하는 것은 바로 설거지입니다. 150여명이 점심을 먹고 나면 1회용그릇을 좀 사용한다고 해도 산더미같이 설거지가 쌓입니다. 가끔 부엌에 들어가 보면 연로하신 집사님, 권사님께서 열심히 성자되기 첫걸음을 하고 계십니다. 그럴 때마다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습니다. 앞으로는 안 미안하겠습니다. 성자되기 걸음마를 하고 계시는데 왜 미안하겠어요? 축복을 누리고 계신 것이잖아요!

지난주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교회에 오시는 남편, 그 동안 좋아하는 목사가 없었지만 그래도 황목사는 1주일에 한 번씩 보고 싶어서 교회에 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시고, 언제나 믿을 수 있게 될까 하는 분입니다. 사업 일로 주일 예배는 참석을 못하셨는데 이분이 오후에 오셔서 설거지를 다 하셨답니다. 뭘 아시는 분 같습니다. 설거지가 성자되기 첫걸음인 것을 알고 하셨을 리가 없잖아요? 될성부른 나무는 떡 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잖습니까? 기대가 됩니다. 이 형제가 신앙적으로는 구도자에 불과한데 이 수준이라면 둘로스 성도들은 대단하겠지요? 

깊은 산 속에서 도를 닦아 성자가 되거나 불을 받아 눈에 무엇이 번쩍했다고 성자가 되겠어요?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신비한 음성을 듣는다고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청산유수같이 기도하고, 입을 열면 성경 말씀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고 성자가 되겠어요? 잠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이불 정리하기, 세수하고 세면대를 깨끗이 닦아두기, 수건을 제자리에 걸어놓기, 옷장 문 닫기, 신발 꺼내고 신발장 문 닫기, 신문 보고 가지런히 놓기, 만나는 사람에게 미소로 인사하기, 늘어진 동료의 어깨를 토닥이며 힘내라고 격려하기, 커피 두 잔 만들어 옆 사람과 나눠 마시기, 기다리는 가족에게 빨리 돌아가기, 아이들 방에 가서 안아주기, 함께 저녁 먹기, 양말 벗어서 빨래 통에 넣기, . . . 비단 설거지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생활 속의 작은 일로 성자가 되어갑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입니다. 성자되기 첫걸음을 시작해 봅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의 성자가 아닙니까?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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