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속이 비어있습니다. 대나무는 질기기는 하지만 잘 휘어집니다. 그런데 높게 곧게 자랄 수 있습니다. 대나무를 사용하여 집도 짓고, 잘라서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디는 정말 강합니다.
철길은 쇠로 만든 길입니다. 기차의 바퀴가 이음새를 지날 때마다 기차가 달리는 특유의 철거덕 소리를 냅니다.이 소음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레일을 길게 만듭니다. 훨씬 조용하게 달리는 기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에 가서 KTX를 탔더니 워낙 빨리 달리니까 옛날 기차가 달리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레일을 하나로 길게 한다면 기찻길은 모두 직선으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짧게 잘려있기 때문에 굽은 길도 돌아가고, 가파른 길을 오르기도 합니다.
만약에 학교를 단계별로 나누어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유치원 나이에 한 번 들어가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등으로 나누지 않고 다닌다면 얼마나 지루할까요? 또 학년을 나누지 않고, 학기도 나누지 않고, 중간에 방학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끝까지 학교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학기별로 나누고, 연도별로 학년이 올라가고, 몇 년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중간 중간에 평가도 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1991년에 남태평양 가운데 작은 섬 사이판에 간 이후로 23년째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크게 다른 것은 사이판이나 엘에이나 4계절 구분이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일단 겨울에 눈이 안 옵니다. 얼음도 얼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곳에서도 겨울을 느끼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이판은 한 겨울에도 오전에 바다수영을 할 수 있을 만큼 더운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철이 되면 점점 추위가 심해져서 전기장판을 사용하게 됩니다. 계절은 한 해를 나눈 마디입니다.
창조주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에 시간과 절기를 만드시고, 1년을 365일로 만드신 것이 참 신기합니다. 엉뚱한 상상을 해 봅니다. 하루를 지금처럼 24시간으로 하지 않고 한 240시간이나 2400기간으로 하고, 1년을 3650일이나 36500일로 했다면 하루를 살면 죽겠지요? 하나님은 초와 분과 시간과 날과 주와 달과 해로 세분해 놓으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시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고, 영원한 현재만이 존재한답니다. 다만 인간들을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니까 과거도 있고, 현재도 있고, 미래도 있게 하셨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자주 돌아보라고 하셨겠지요.
전기는 발전소에서 가정집까지 가는 길이 꽤나 멉니다. 가는 길이 멀면 사람처럼 전깃줄도 전기도 약해집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전봇대를 세워 늘어진 팔을 붙잡아줍니다. 또 변압기를 세워서 힘을 북돋아줍니다. 그래서 멀리까지 꼭 필요한 압력으로 전기를 공급합니다. 우리도 세월의 단위를 마감하게 하신 것은 이렇게 힘을 충전하라신 뜻을 것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 해를 맞이하는 것은 일생에 수십 번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의식 없이 보내는 어린 시절이 있고, 철없이 방황하는 시절도 있고 보면 실상 진지하게 해를 마감하고 의지를 가지고 새 해를 설계하는 해는 채 절반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서 튼튼하고, 높게 자랄 수 있습니다. 인생도 한 해 한 해 거듭되는 마디가 있어서 튼튼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대나무가 자라면서 모든 마디도 함께 자라는 것처럼 인생도 지나간 과거라고 하여 고착된 것이 아니라 오늘의 내가 자라면서 나의 과거도 더욱 성숙하게 됩니다. 과거의 실수나 성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통하여 얻은 지혜를 실천하여 더욱 성숙해지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더 위대한 인격으로 가꾸어간다면 그 실수가 영광스럽게 된다는 뜻입니다.
기차가 달릴 때에 나는 철길과 바퀴의 합창처럼 우리 삶도 나름대로 노래를 만들어갑니다. 한 해 한 해를 살아온 궤적을 따라 다른 소리를 냅니다. 오늘 내가 달리며 부르는 모든 노래는 과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래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3중창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는 배경음악이고, 현재는 소프라노 목소리이고, 미래는 아직 부르지 않은 악보와 같다고 할까요? 마디마디 나눠진 시간들을 알뜰하게 정리해 놓아야 좋은 음악이 될 것입니다.
과거를 미워하지 마세요. 후회스럽게 살았다고 해도 과거와 화해를 해야 합니다. 성공으로부터 얻은 것도 있지만 교만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성공의 최고의 적은 직전의 성공”입니다. 실패함으로써 잃어버린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인생에 대한 확신 등이 있지만 신중하게 하고, 연구하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그래서 더욱 지혜롭게 하고,결심을 단단히 하게 하는 수확도 있습니다. 오늘 내 태도에 따라서 과거의 성공이 재앙이 되고, 실패가 보배가 되기도 합니다. 과거는 과거로 결정되지 않고 현재를 사는 나의 자세에 따라 변화합니다. 그래서 과거는 아직 살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