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자아상(自我像)을 위하여
해적선을 타고 다니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거칠고 호탕한 아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였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돌보아주었습니다. 20여년을 바다에 떠돌며 살던 어느 날 아버지가 죽음을 앞에 두고 아들을 불렀습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을 합니다. “왕자님, 왕자님의 부모님은 현재 왕에 의하여 살해되셨습니다. 저는 부왕을 모시던 호위병이었습니다. 핏덩이 왕자님을 구해서 도망하여 오늘까지 왕자님의 아버지 노릇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 나라는 왕자님의 나라입니다.” 엄청난 고백을 들은 아들은 그 날부터 삶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술을 마시거나 다투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추한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뱃사람이 아닌 왕자로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하던 왕자는 드디어 군대를 일으키게 되고, 마침내 부왕을 살해한 반역자를 무찌르고 나라를 되찾고, 왕이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나라는 사람은 왜 이 모양인가? 내 안에 선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나에게 희망이 있는가? 나는 내가 싫다! 나는 나를 혐오한다! 나는 나를 피하여 도망하고 싶다! 부모님, 왜 나를 낳으셨나요? 속으로 외치면서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면 불쾌하여 화를 내지만 나를 가장 무시하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여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할 때도 있지만 나를 칭찬하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매여서 정신없이 살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아상이 있습니다. 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병든 자아상, 일그러진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뒤로 인간의 자아상이 형편없이 상했습니다. 죄가 점점 번성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쳤고, 인간에 대한 철저한 실망은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예리한 칼을 들이대며 윽박지릅니다.
자아상이 약하거나 병들었거나 비뚤어진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자존감(自尊感)이 낮기 때문에 스스로 의미 있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돕고 섬기는 일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입니다.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감도 없습니다.
자아상이란 자기 마음에 그려진 자기 그림입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 마음에 나쁜 그림을 자꾸 그려댑니다. 실패자로, 무가치한 자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자로, 죄인으로, 수치심으로, 죄책감으로, 그리고 수시로 분노하고 다투고 싸우고 분열하는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우리에게 이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이런 원수들의 고발을 마치 자기 자신의 생각인양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아름다움과 존귀함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밝은 면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가능성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런 말씀을 아멘으로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에 대하여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를 교만으로 정죄하는 가르침을 받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속삭임이 들려올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가장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양편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원수는 우리를 정죄하고 무시하고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불화살을 쏘아댑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내어놓으셨음을 깨닫고 믿도록 초청하십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받고, 믿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왕자가 자기의 신분을 알고 변화한 것처럼 우리도 생각을 바꾸어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피 흘려 우리 죄를 용서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무능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을 모셔 들입니다. 우리의 무지하고 어리석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요1:12),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마5:14). 죄로 더럽혀진 세상을 정화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상을 회복하기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도,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을 우리의 마음을 만지십니다. 치유하시고 회복하십니다. 주님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만지는 분은 없습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