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 되면 항상 어머니를 생각하게 됩니다. 감성적이지 못한 저 같은 사람이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콧등이 시큰해지는 체험을 매년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축복입니다. 설교를 해야 할 형편이라 고국에 계신 어머님께 전화라도 하게 되는 것도 불효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천연덕스레 잊었던 어머님께 국제전화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사랑이요, 희생이요, 인내요, 그리고는 잊힘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느 분의 글에 보니 자녀들이 홀로 사시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더 자주 찾는답니다. 아버지에게는 정이 별로 없어도 예의를 갖추는 반면에 어머니에게는 소홀한 것입니다. 오로지 자식이 잘되기만을 위하여 “엄마는 오래 참고, 엄마는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엄마는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엄마는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엄마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십니다.”(고린도전서 13장4-7절 응용). 그래도 자식은 무엇인가를 더 바라는 모양입니다.
엄마의 끝도 한도 없는 희생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자식이 잘되는 것이지요. 자식이 행복한 것이며, 소위 성공하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자라고, 공부 잘하고, 학교에서 선생님께 칭찬 듣고, 좋은 대학에 가고, 돈 잘 벌고, 참한 배필 만나서 오순도순 재미나게 살고, 때 되어 손주 손녀를 품에 안아보게만 해 준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요? 엄마는 이 소박한 꿈을 위해서 지칠 줄 모르고 달리는 철마처럼 살아오셨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란 것일까요? 이런 소박한 꿈을 이룬 행복한 어머니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양노원에 계신 노인들은 자식 자랑으로 소일하지만 그 훌륭한 자녀들, 성공한 자녀들, 잘 사는 자녀들은 다 외국에 멀리 삽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자주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활비나 용돈을 보내주는 것도 잊을 때가 많지요. 죽어도 자식들에게 알리면 안 됩니다. 바빠서 오지 못하는데 맘 상할까봐서 입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옳은 일이며, 이렇게 해야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게 된다고 하십니다(엡6:1-3). 어머니도 자식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기를 원합니다.그렇다면 어머니에게 순종을 가르치고, 어머니 공경을 제일로 가르쳐야 되는 것 아닐까요? 좋은 대학 가고 돈 잘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부모님께 순종하며, 부모님을 공경하는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어머니의 성공은 효도 교육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엡6:4)이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물질)을 다 마련해주는 것도 어렵지만 존경받는 부모가 되는 것은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어머니는 보편적이나 성숙한 어머니는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성공이 자식의 축복이요, 민족과 교회의 성공이 될 것입니다. 모든 어머니가 성공하길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2004년 5월 9일의 목회서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