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신비입니다. 창조적인 힘과 파괴적인 힘이 사랑에서 나옵니다. 명작도 고전도 노래도 다 사랑의 자녀들입니다. 무계산적이고 무제한적이고 무시간적인 것이 사랑입니다.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랑이고 이를 치료하는 약도 사랑입니다. 세상살이에 믿음, 소망, 사랑이 항상 있습니다만 예수님 말씀처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고전13:13).
세 가지의 사랑을 말한 이가 있습니다. [만약에(If...) 사랑]은 네가 만약에 이렇게 저렇게 하면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Because...) 사랑]은 네가 이렇게 저렇게 해주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이런 사랑은 불량품입니다. 세상에 흔한 것이 이런 사랑이지만 진품(眞品)은 아닙니다. 조건적이잖아요. “사랑의 조건”이라는 연속극이 있었습니다. 두어 편 밖에 안 보았지만 인터넷으로 마지막 회를 보고, 출연진들의 인터뷰 장면을 보았습니다. 사랑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에 탤런트들은 한결같이 “사랑에 조건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진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허물투성이입니다. 어떤 조건이라도 붙으면 사랑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 진정한 사랑이 드러납니다.
아름다운 마음(Beautiful Mind)이라는 영화에서 프린스톤 대학의 유망한 교수 Jonh Nash가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을 앓게 됩니다. 제자였던 부인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희생적으로 남편을 내조합니다. 수년이 지난 후에 남편이 분열증을 극복하고 노벨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시상식 연설에서 “사랑이란 묘한 등식(Strange Equation of Love)에 따라서 자기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감사하며 공을 돌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지요.
사랑 색깔은 그리움입니다. 슬픔도, 기쁨도, 더없는 행복도 사랑 색깔이지만 그래도 그리움이 제일 잘 어울립니다. 아내를 사랑함도 그리움으로, 자식을 사랑함도 그리움으로 드러납니다. 마주 보고 앉아서도, 꼭 끌어안고서도 그리운 것이 사랑입니다. 독점하고 싶으면서도 온 세상을 안겨주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이 사랑인데 그 가운데 항상 그리움이 있어서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예배의 자리로, 주님과의 깊고 깊은 교제의 자리로 부르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부부가, 부모자녀가 떨어져 사는 일이 다반사인 시절입니다. 그리움이 차고 넘치는 세상입니다.
개척 초기에 우리 교회에 나오시던 성도님께서 자신의 시집(詩集)을 선물하셨습니다. 시를 좀 읽고 싶을 때 주님께서 제 마음을 아신듯하여 반갑고 기뻤습니다. 찬찬히 읽는 중에 다음 시에 눈이 머물렀습니다.
눈사람 김희채
밤새 쌓인 장독대에
소복한 눈꽃을
시린 손 호호 불며
눈사람 만들었네.
어린 가지 꽃을 꺾어
내 님 고운 입술 그리고
아궁이 숯으론
동구란 눈썹 그리고
가련한 너의 손엔
털장갑 호젓이 드리워서
보고픈
내 님 만들었네.
사랑하세요? 조건을 무지르세요. 섭섭함을 날려버리세요. 상처를 받았어요? 상처 준 이의 상처를 생각하세요. 상처 많은 사람이 상처를 주거든요. 그리움을 잘 가꾸세요. 그리움이 모든 조건을 초월케 합니다. 모질게 먹은 마음이 녹아지는 것도 이 그리움으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그리움을 승화시키세요. 사랑 때문에 그리운 법입니다. 눈사람을 만든 손길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어 가는 법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닮은꼴로 만들어가시듯이 말입니다. 사랑이란 묘한 등식에 따라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랑으로 행복하세요!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