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우수합니다. 단군 이래 지금처럼 한국인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떨친 적은 없었습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탁월한 한글을 만들고, 활자를 만들어 인쇄를 하였습니다. 그 혜택을 입은 까닭이겠지요. 한국인의 아이큐(I.Q., Intelligence Quotient 지능지수)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조사보고가 있습니다. 2011년 영국의 한 교수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홍콩에 이어서 세계 2위입니다. 홍콩은 평균 아이큐가 107이고, 한국은 106입니다. 일본이 105로 3위네요.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민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나라 이스라엘은 94로 45위입니다. 미국은 21위 98입니다. 또 다른 통계는 평균치와 상위 5%의 평균과 하위 5%의 평균을 발표했는데 여기서는 한국이 평균 106.66으로 1위이고, 상위 5% 평균은 125.25나 됩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돋보입니다. 세계 정치의 중심에 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세계은행 총재 김용 등을 비롯하여 산업과 문화와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가히 세계 정상에 서 있습니다. 한국인은 머리가 좋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인은 행복할까요? 세계 행복지수가 있습니다. OECD 36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24위이고, 아이큐가 우리 다음인 일본은 21위입니다. 아이큐 21위인 미국은 3번째로 행복한 나라입니다. 머리 좋은 우리나라는 하위 1/3에 서 있습니다. 머리가 세계 제일이고, 경제도 크게 발전하고, 각 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민족이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자살률은 더욱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2010년까지 무려 8년째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입니다. 인구 10만명당 33.5명이 자살합니다. OECD국가 전체 평균은 12.6명이니까 전체 평균의 2배도 넘습니다. 2위인 일본이 21.2명으로 우리와 격차가 매우 큽니다. 경제도 발전하고 머리도 제일 좋은데 왜 이렇게 자살을 많이 할까요?
감성지수(E.Q., Emotional Quotient)가 지능지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 더 건강하게 살고, 더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사실 감성이 메마른 사람에게 무슨 인간미가 있겠습니까? 감성이 메마른 사람은 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감동을 못 느낍니다. 행복은 느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성지수가 높아야 좋다고 하지만 사실 감성지수가 무엇일까요? E.Q.박사 Dr. Goldman은 감성지수 구성요소 5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자기 인식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인 인식을 하는 사람이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입니다. 둘째, 자기 규제능력, 즉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감성지수가 높습니다. 셋째는 동기부여입니다. 선한 목적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능력이 많은 사람이 감성지수가 높습니다. 넷째는 감정이입니다. 희노애락의 감정 소통이 자유로운 사람이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사회성입니다.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좋은 사람이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감성지수가 높은 것이 아니라 매우 포괄적인 것입니다.
제가 감성지수를 구성하는 5가지 요소를 생각하면서 탄복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감성지수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탁월하게 발전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첫째, 자기 인식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죄로 인한 수치심은 자기 존재를 부끄럽게 여겨 부인하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같은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빛이며 소금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보다 나은 자기 인식이 있겠습니까?
둘째, 자기 규제의 문제를 보겠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열매가운데 절제가 있습니다. 예수님 신앙은 바로 자신의 그릇되고 헛된 욕망을 자제하게 합니다. 죄를 멀리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자기를 통제하는 삶이 됩니다. 셋째, 동기부여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게 되며, 소명에 따라 헌신하게 됩니다. 세속적 가치관과 목표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하게 됩니다.
넷째, 감정이입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잘 웃으셨습니다. 성경에서 웃으셨다는 표현은 없으나 늘 기쁨이 충만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기쁨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 기쁨도 충만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병자를 보면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 그냥 보내지 못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보면서 우셨습니다. 또 불같이 화를 내시면서 성전에서 장사사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쫓아내시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감정의 범위가 넓고, 표현이 자유로우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어 치유하실 때에 우리도 건강한 감정을 갖게 되고, 자유롭게 소통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게 됩니다. 다섯째, 사회성은 이상의 모든 요소가 신앙 안에서 개발될 때에 자연스럽게 성취되는 단계로 보입니다. 타인에게 의존적이지 않는 자기 인식, 부절제와 방종을 멀리하는 절제, 바른 목적에 헌신하는 동기부여 능력, 스스럼없이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감성지수 높은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십자가도 지옥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 그 분으로 인하여 오늘 행복한 우리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