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아버지날에 즈음하여)

사이트관리자 0 1,140 2022.06.12 01:04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느 날, 중국에 사는 한국인 변호사님 가족이 사무실에 찾아오셨습니다. 이 분은 한국에서의 변호사 생활을 청산하고 중국 연변에 땅을 크게 장만하여 농장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기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내와 아들과 딸을 위해서 축복하고,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산과 같이 바위와 같이 견고하고 든든한 아버지로, 남편으로, 가장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칭찬해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부인이 묻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아이들이 하나는 아버지를 바위라고 하고, 다른 아이는 산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사실 놀랐습니다. 후에 중국에 갔을 때 그 가족이 연길까지 나와서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 한국 아버지들은 미국의 아버지처럼 다정다감하고 친구 같은 아버지가 많지 않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처럼 삶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신앙에 대하여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아버지도 많지 않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아이들의 40%가 아버지가 없이 자란다고 하는데 아직 한국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가끔 아버지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립니다. 유치원 어린이가 그린 가족 그림에서 아버지가 없다든지, 누워서 잠을 자는 아버지, TV만 보고 계신 아버지, 늘 화만 내는 아버지. . . 그러나 과연 우리들의 아버지가 이 정도밖에 안 될까요?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요?

아버지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잘 표현하지 않으십니다. 아니지요. 화를 내는 것은 잘하시지만 아무 근심 없이 호탕하게 웃지를 않으십니다. 아무리 슬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자녀들 앞에 눈물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감성 표현을 경멸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자는 우는 것 아니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유독 눈물이 많았던 제가 잘 압니다. 표현하지 않는다고 희로애락이 감소하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속으로 한이 되어 쌓여가지요. 한국 사람들이 술을 세계적으로 많이 마시는데 아마도 아버지들이 술기운을 빌어서 쌓인 한을 풀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소에 전혀 말이 없던 샌님 같은 아버지도 술에 취하면 술술 실타래 풀리듯이 이야기하십니다. 음정과 박자가 틀려도 늘어지게 한 곡조 뽑으시는 것도 술이 거나하실 때 보여주시는 아버지의 여유입니다. 아버지를 어떤 사람입니까?

아버지를 묵상하면서 떠오른 이미지가 있습니다. 방파제(防波堤)입니다. 바닷가에 파도를 막아 가옥과 농지를 보호하도록 만들어 놓은 제방입니다. 아무 말이 없습니다. 자신을 뽐내는 멋진 자태도 없습니다.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항상 거기 있습니다. 철부지들은 그 위에서 뛰어놀지만, 그 방파제가 있어서 큰 파도가 밀려와도 태풍이 불어도 물을 막아준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추억에 아버지의 목마가 있습니다. 시장에 갈 때, 추석 성묫길에, 동네 잔칫집에 다녀올 때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앉아 아버지 머리를 감싸 쥐고 아버지 걸음대로 출렁거리며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아래로 동생이 둘이나 있었기에 아버지의 목마와 넓은 등은 제 차지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등에 업혀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대며 침을 흘리며 자던 잠은 정말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한 행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입니까? 어느 섬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 바다를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해서 심어놓은 방풍림(防風林)이었습니다. 험한 세파를 당당하게 온몸으로 막아주는 방풍림, 바로 그것이 아버지입니다. 몸을 향해 부는 바람, 마음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영혼을 침식하려고 휘몰아치는 바람을 모든 힘을 다해 막아주는 것입니다. 견디다 못해 뿌리가 뽑히기도 하고, 허리가 부러지기도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 바람막이가 아버지입니다. 특별히 해방 이후에 세계에서 가장 어지러운 속도로 변화한 한국의 아버지들은 정말 정신없이 사셨습니다.

감성시대가 되어 다정한 아버지, 신세대가 되어 친구 같은 아버지를 찾을 때 우리들의 아버지는 기가 죽습니다. 물질 만능의 시대가 되어 더욱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하니 서민으로 사는 아버지는 기가 죽습니다. 파도를 막고 바람을 막다가 지쳐서 큰소리라도 치고, 분에 섞인 매라도 들었다 치면 여지없이 상처를 준 몹쓸 아버지로 정죄 받는 초라한 아버지가 됩니다. 함께 놀아주지 못한 아버지, 인정과 칭찬의 말을 해주지 못한 아버지, 선물도 안 사주신 아버지, 안아주지도 않으시고, 볼을 쓰다듬어주시거나 손을 잡고 산책을 못 해주신 아버지, 무엇을 사주시겠다, 어디를 함께 가겠다던 약속을 어긴 아버지. . . 이 모든 것은 아버지들의 죄목입니다. 또 할아버지의 죄목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모르고, 아버지를 오해하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다가 아버지가 무엇인지를 조금 알 것 같은데 벌써 제가 아버지로서의 황금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 철없이 살아온 아버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아버지,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잘 이해시키지도 못한 아버지. . . 아버지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나도 산과 같고 바위와 같은 아버지였습니다. 방파제 같고, 방풍림 같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부족했음을 절감합니다. 이제라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모든 아버지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 아버지들을 도와주세요! 아무리 둘러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외에는 어디 손 내밀 곳이 없습니다!

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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