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십자가 위에서 보는 세상

황의정 목사 0 3,995 2018.04.28 06:18

십자가 목걸이를 한 분들이 많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징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원래 로마의 형틀이었습니다. 가장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도구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면 보통은 며칠씩 고통을 겪다가 운명합니다. 심한 경우는 10일까지도 목숨이 붙어있습니다. 요즘은 약물 주사나 전기 충격으로 또는 고전적 방법으로 교수형을 하기도 합니다. 죄를 지어 사형을 당하지만 최후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인간적 배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흉악범들을 처형하는 방법으로 고통을 극대화시키는 형틀입니다. 삽자가가 아름다운 여인들의 가슴에도 어여쁜 귀에도 걸려있는 것을 보면 극적인 변신이란 생각이 듭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리면 2가지 원인으로 죽습니다. 하나는 질식하여 죽는 것입니다. 두 손(손목)과 발에 못을 박혀 매달려 있기 때문에 숨쉬기 위해서 발에 힘을 주어 몸을 밀어 올립니다. 발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두 팔에 매달리면 가슴이 조여서 숨을 못 쉬게 됩니다. 발에 힘을 주어 몸을 들어 올리고 숨을 쉽니다. 이렇게 반복하다가 힘이 다 하면 그냥 매달려서 질식하여 죽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출혈입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많은 고문을 받고, 사형 언도를 받은 후에는 보통 120대의 채찍을 맞게 됩니다. 일반 채찍에 맞아도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게 되지만 심한 경우에는 끝에 쇠갈고리가 달린 채찍으로 때립니다. 온 몸에서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가고, 많은 피를 흘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약 6시간 정도의 고통을 겪고 운명하셨습니다. 아침 9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쇠갈고리 채찍에 맞아서 너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일찍 돌아가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됩니다. 안식일에 시신이 언덕에 달려있는 것을 원치 않는 장로들과 제사장들이 총독에게 건의한 까닭에 죄수들을 일찍 죽게 하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숨쉬기를 못하도록 정강이뼈를 꺾어주는 것입니다. 명을 받은 군인들이 양편의 강도들의 정강이뼈를 먼저 꺾어 준 뒤에 예수님께 와보니 이미 운명하셨습니다. 이 때 죽음을 확인하는 방법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보는 것입니다. 운명한 사람은 피와 물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뼈를 꺾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세상을 바라보셨습니다. 흥분하고 분노한 군중들, 잔인한 군인들, 득의한 사실에 만족해하는 장로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이 보였습니다. 예수님 눈에 비친 이 가지각색의 사람들은 한 가지 색깔이었습니다. 죄(罪)와 심판이요, 그들의 미래는 죽음(死亡)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슴은 무너졌습니다. 육신의 고통과 멸시 천대 조롱으로 상처받은 마음보다도 더 쓰리고 아프셨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열광합니다. 예수님의 피 값이 필요한 군인들은 껍데기 옷만 나누고 제비뽑으면서 흡족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불쌍히 여기거나 조롱하거나 모든 이들이 자기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을 잊고 부르짖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못함이니이다!”(눅23:34). 십자가에서 본 세상(사람)은 무지였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온 세상은 예수님께 그렇게 무지한 용감성을 잔인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운명을 부탁하는 한 강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고난 주일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어달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 모두가 알지 못합니다. 고통 속에서 허망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눈을 가집니다. 십자가에서 그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우편 강도처럼 주님과 함께 낙원에 가는 우리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영혼의 고통을 덜어드릴 일이 무엇입니까? 한 영혼을 더 구원해야하겠습니다. 한 사람을 더 건져야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잖아요? 그렇게 믿습니까?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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