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황의정 목사 0 2,965 2018.05.04 08:32

  요즘 제가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무슨 문제이든지 생각을 골똘하게 하다보면 꼭 아버지에게 귀결되니 어찌 아버지 생각에 종지부를 찍을 수가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늘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인생은 낳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로부터라는 생각이 점점 더 확실해집니다. 아버지를 잘 만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고, 모든 문제의 해결이며, 만족과 행복한 인생의 가장 확실하고 튼튼한 기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아버지를 오랫동안 여러 방향에서 상실하였습니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좁은 땅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버지들이 항상 식량공급에 헌신하였습니다. 물론 아버지 혼자 한 것은 아니고 어머니도 함께 하였지만 아버지들은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였습니다. 마음 놓고 쉬어보지고 못하고, 호탕하게 웃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가 되는 동안 우리 민족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아버지들이 전쟁터에서 사라졌습니다. 약소국가의 아버지들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이슬처럼 사라지고, 자녀들은 아버지 부재 속에 자랐습니다. 1950년 6월 25일의 한국전쟁까지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 시대에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하여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엄한 아버지상을 강조하게 되어 지체 높은 양반 가문일수록 아버지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되었습니다. 종교적인 가르침으로 인해서 아버지를 상실하였다고 보겠습니다.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아보세!”를 모토로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새벽 종 소리에 깨어나던 시절에도 우리 아버지들은 죽기 살기로 일을 하셨습니다. 모질고 무서운 “보릿고개”를 아는 세대의 아버지들은 굶어서 얼굴이 누렇게 뜨는 자녀들을 지켜보면서 속병을 앓아야 했으니까요. 어려서 산골에 살던 저는 이 길고도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는 동네 사람들 속에 끼어있었습니다. 1960년대의 한국은 정말 어렸던 제 기억에 늘 풀이 죽어있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한 양지에 쭈그리고 앉아서 놀았고, 고구마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가 일쑤였고, 그것도 하루 2끼를 챙겨 먹으면 잘 먹었으니까요. 아버지들은 죄없는 죄인이 되어 늘 말이 없으셨습니다. 근대까지도 수천 년을 이어온 끈질긴 가난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아버지들이 분주해지셨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정말 열심히 신나게 일하셨습니다. 가끔은 술도 마시고, 돼지고기 한 근씩 끊어 오시면서 흥얼거리는 아버지의 노래와 그리 싫지 않던 술 냄새를 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늘 일에 지쳐 피곤한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아버지로서 소홀할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산업발전에 아버지를 또 잃어버렸습니다.

 

  경제가 발전하자 아버지들은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레저가 발달하고 여행도 하게 되고, 세계적인 명품으로 사치(?)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취미생활도 하시고, 체력관리를 위해서 운동도 하시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문제는 여유로워진 아버지가 자녀에게로 가정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여유를 누리는데 바빠지신 것입니다. 부요함에 아버지를 여전히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사실 아버지들은 늘 부르던 이름처럼 “바깥양반”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밖으로 돕니다. 그래서 늘 집 안에는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아버지 자신들도 그 자리가 불편합니다. 익숙하지 않고, 어색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밖에서 일을 찾게 되나 봅니다. 아버지는 그 존재 자체로 엄청난 무게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 생각하면 그 존재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명은 너무도 막중하여 그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돌봄은 너무도 독특하고 강력해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분입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공격하여 처음으로 몰아낸 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모델을 잃은 아담은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고, 가인은 아벨을 살해하는 비극을 지켜보아야했습니다. 가정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아버지를 본받아 위대한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밖으로만 돌지 않고, 안팎으로 두루 살피는 아버지가 되어야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사랑하며 섬기며 사는 것을 두루 보여주는 아버지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는 성화해야 합니다. 낳은 아버지에서 좋은 아버지로, 좋은 아버지에서 위대한 아버지로 성장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를 찾아야 아들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주세요!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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