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말하기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전보다 사람들의 말솜씨가 많이 좋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당당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학생이 한 반에 몇 명 안 되었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은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더 귀엽고 아름답고 미덕인양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모두 말하기에는 챔피언입니다.
문제는 말하기에는 능해졌는데 듣기에는 더욱 무능해졌습니다. 그래서 대화는 퇴보를 한 듯합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 60% 이상이 적절한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합니다. 윗사람은 말하고 아랫사람은 듣는 것이 한국식(?) 대화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말만 잘하면 된다는 미숙한 태도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의사소통의 달인이십니다. 우선 우리가 기도할 때에 듣기에 얼마나 인내심이 많으신지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한두 시간을 속사포로 쏘아대는 소리를 다 들으십니다. 중간에 끼어들어 한 마디 하실 법도 하신데 하나님은 우리가 기다릴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십니다. 아마도 우리가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이유도 우리가 조용히 있을 때에 말씀하시려고 밤에 찾아오시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시지 않으실까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지면 우리는 금방 의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나 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지 않으시나 보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은 별 관심이 없으시나 보다. 그래서 기도와 예배에 열정이 식어집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요?
야곱의 후손 70명이 흉년을 피해서 이집트에 간 뒤로 430년 만에 다시 출애굽할 때까지 예언자도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침묵하신 기간이었습니다. 겨우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태어나게 하신 것이 전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 중에서도 하실 일을 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을 하늘에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그리고 공중의 먼지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계셨습니다. 70명이 200만명 이상으로 불어났습니다. 긴 세월 종살이를 했지만 마침내 출애굽할 때는 모든 백성이 은금 패물과 수많은 의복을 취하여 나오게 하셨습니다. 침묵 중에 아무 일도 안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 요한이 날 때까지 400년을 신구약 중간기라고 합니다. 이 기간에는 아무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예언도 계시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또 한 번의 긴 침묵 기간이었지요. 이때도 어김없이 하나님은 큰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성전 중심 신앙을 회당 중심 신앙으로, 제사 중심 신앙을 말씀(율법) 중심 신앙으로 발전시켜 주셨습니다. 팔레스타인 중심의 생활에서 전 세계로 흩어져 디아스포라 시대를 만드셨습니다. 영적으로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구약 신앙에서 영적이고 내세 지향적인 신앙으로 발전시켜놓으셨습니다. 더욱이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어 모든 사람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언어(헬라어)와 어디든지 신속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도로를 완벽하게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는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부르짖을 때부터 하나님의 또 한 번의 침묵이 시작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죄인들의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때에도, 빌라도가 사형언도를 할 때에도, 십자가 위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규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침묵으로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하나님의 아들을 사망에 내어주시고, 저와 여러분을 얻으셨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에 수많은 죄인들을 지옥행 열차에서 끌어내어 천국열차로 옮겨 태우시는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는 축복의 때입니다. 기적을 이루시는 때입니다. 요란하고 시끄런 중에 일하시는 하나님보다 침묵 중에, 고요한 중에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합니다. 기도 응답이 신속하게 오는 것도 감사하지만 긴 세월 침묵으로 숨통을 조여 오는 때에도 감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지성소에서는 빛이 없어도 환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말이 없어도, 소리가 없어도 맑고 깨끗하게 대화가 됩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즐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