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추임새를 넣어주세요!

황의정 목사 0 11,855 2018.04.28 07:42

창은 우리 민족의 전통 성악입니다. 북, 장구, 징, 그리고 꽹과리를 치는 풍물은 우리 전통 오케스트라입니다. 현대 음악에 밀려서 낯설게 느껴지는 감이 없지 않으면서도 어쩌다 듣게 되면 절로 어깨춤으로 화답하게 되는 것이 신기합니다. 민족적 본능이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국 교회를 일컬어서 서양 음악을 서구 교회보다 더 잘 하는 교회라고 하시는 미국인 은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랑스러워해야할지 부끄러워해야할지 묘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소리꾼은 그저 손에 부채 하나 들고 섭니다. 그 앞에 북 하나 놓고 단정하게 앉은 사람이 반주자(고수)입니다. 이 반주자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북으로 반주하고 얼씨구! 아먼! 그렇지! 하면서 추임새를 넣습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신영길이라는 분의 글에서 영화 서편제의 한 대목, 아버지 유봉이 아들 동호에게 북을 가르치며 추임새 넣기를 가르치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자동차 길을 달리려면 길이 잘 닦여 있어야 하듯이

북이 장단하고 추임새로 소리 길을 닦아줘야 한단 말이다.

일 년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북도 밀고 당기고 맺고 푸는 그런 길이 있는 것이다.

추임새를 할 적에도

소리가 나가다가 숨이 딸려가지고 처진다 싶으면

얼씨구 이렇게 추어서 부추겨 주고

소리가 슬프게 나갈 때는 북 가락도 줄이고 추임새도 슬프게 해주고.....\"

어릴 때, 어머님은 늘 우리들의 말을 경청하셨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아~먼, 그렇지!”하셨습니다. 우리 7남매는 어머님의 추임새에 힘을 얻어서 얼마나 으스대면서 이야기를 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이야기였을 것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햇볕에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장단을 맞추시는 어머님은 참 행복해 보였지요. 이야기 다 끝내고 머쓱할 때면 두 손으로 머리부터 얼굴까지 쓰다듬어 주시면서 “아이고 내 새끼! 어쩌면 이렇게 잘 생겼을꼬?”하십니다. 험한 농사 일로 거칠어진 손바닥에 얼굴이 아파도 개의치 않았지요. 횅하니 뛰어나갈 때면 구름 위를 달리는 듯했습니다. 요즘은 그 꺼칠한 엄마의 손길이 자꾸 그리워집니다.

어머님 장례식 때에 사촌 동생들이 고스톱을 쳤습니다. 저도 끼어들었더니 판돈 얼마를 만들어주면서 “형님은 이 돈 다 잃을 때까지만 하세요!”합니다. 십 수 년 전 큰 어머님 돌아가셨 때 제가 겁 없이 달려들었다가 봉을 썼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몇 판 만에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경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목사가 고스톱 판에서 은혜받았다면 이상하지요? 들어보세요.

화투장을 들고 판이 돌아가면 왜 원하는 패가 안 나오냐고 합니다.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녀!”“기다려야제!”그럽니다. 많이 주워간 사람보고 말합니다.“그렇게 혼자 다 쓸어가면 세상이 좋아지덜 안혀! 서로 나눠먹고 살아야제!”그러다가 한 사람이 스톱을 할까 말까 망설입니다.“욕심내질 말어! 한 번 돌아가면 기약이 없는 법이제!”구수한 사투리에 정이 뚝뚝 떨어지는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도 서로 맘을 상하지 않고,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고, 책망도 합니다. 신기하게 들었습니다. 전에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말이 이렇게 정이 담겨있구나! 우리는 무슨 말이든지 고수의 북소리와 추임새가 되는구나! 저는 그날 감동을 먹었습니다.

각박한 세상이 되면서 삶에나 말에나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소리꾼이 되려고만 하지 고수가 되려고 하질 않습니다. 아예 소리꾼이 못된 바에는 심사위원장 자리에 떠억 버티고 앉습니다. 삭막합니다. 저는 설교하다가 “아~멘!”소리가 나면 어머님의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힘이 납니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 순간적으로 생각합니다. “숨이 딸려가지고 처진다 싶으면 얼씨구 이렇게 추어서 부추겨 주고. . . ”가슴이 찡하네요!

제가 학자의 혀를 달라고 늘 기도합니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세워주고 치유하는 말만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간단하게 고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추임새를 멋지게 넣고자 함입니다. “소리꾼은 많으나 고수가 심히 적으니 . . . 추임새를 잘 넣는 고수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라!”제 귀에 들리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추임새 잘 넣는 고수가 되시겠습니까? 아~멘!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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