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아버지의 사랑 고백

황의정 목사 0 16,715 2018.04.21 11:04

아버지! 그립고도 어렵고, 멀고도 또 가까운 분입니다. 제게는 늘 그랬습니다. 무관심한듯하면서도 아니고, 아닌듯하면서도 무뚝뚝하신 분이십니다. 어려서 아버지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타관에 가셔서 사업을 하시는 동안 산골짜기에서 올망졸망 7남매는 아버지의 편지를 기다렸습니다. 그 때는 가방이며 아코디언이며 아버지가 약속하신 선물을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커서 생각하니 그것은 기다림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산골로 돌아오셔서 함께 사시는 동안 아버지와 함께 산을 개간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어려서 그저 거들기만 했지만 완만한 경사가 진 큰 산 자락을 열심히 파서 밭을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말이 별로 없으셨습니다. 노래를 부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후에 예수님을 믿으시고 집에서 카세트를 틀어놓고 찬송가를 따라 부르실 때 아버님이 음치임을 알았으니까요. 아버님의 웃음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항상 근엄하신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은 화가 나신 것 같기도 하고, 헌칠한 키에 넓은 이마,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추신 아버님은 대단한 미남이셨습니다. 사람들 속에 서 계신 아버님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았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버님은 누워계셨습니다. 수년을 그렇게 누웠다 앉았다 하신 것입니다. 별의별 약을 다 썼고, 간호사가가 없는 산골에서 스스로 엉덩이에 주사 바늘을 수없이 꽂으셨습니다. 병수발을 하시면서 농사와 살림을 도맡아서 하시던 어머님의 한숨이 늘 귀에 들렸습니다. 늘 아버님 주변을 맴돌면서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4Km 떨어진 면소재지로 약을 사러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님과 기억에 남는 대화를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버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을까 의문입니다. 제가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하고 부르면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와의 관계가 투사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계셨습니다. 그러나 말이 없으셨고, 늘 어려웠습니다. 잘 섬기고 순종해야 될 분이셨지 나를 사랑하시거나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항상 어머님을 찾았습니다. 용돈도 학용품도 학교 등록금도 항상 어머님께서 해결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그런 분이셨습니다. 

제가 19살에 전도사가 되자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네 앞길 막지 않으려고 교회 나갔다”처음(?)으로 아버지가 날 사랑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깊이 느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도 사랑을 더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행복입니다. 사실 저도 아버님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선교사시절부터 고국 방문 때면 이번에는 꼭 고백해야지 하고 몇 번씩 연습하였지만 매번 속으로 되뇔 뿐이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고 김인회 집사님께서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곧 의식불명 상태에 들어가셨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주일을 맞이하는 이른 새벽에 한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거의 2년 정도를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없던 아버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의정아, 너 보고 싶다. 언제 오냐?”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속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그렇게 가깝고 따뜻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아버님이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고 김인회 집사님을 하나님 나라로 보내는 여정에서 사랑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고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 고인과 가족들 간의 사랑이 넉넉함을 알았습니다. 스스럼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부러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드님들이구나.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김 집사님께서 갑자가 의식이 혼미해져서 마지막 말씀을 잘 못하셨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셨을까요?”성령께서 제 마음을 울리셨습니다. “사랑한다. 고맙다. 자랑스럽다. 그리고 미안하다.”아버지의 사랑 고백에 가족들이 오열했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아들아, 사랑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기회 있을 때에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로 고백하신 하나님 아버지처럼. . .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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