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

황의정 목사 0 11,667 2018.04.21 09:54

한국인의 긍지를 한껏 높여주는 사건으로 연일 신문의 지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흑인과 한국 혼혈인 하인즈 워드가 미식축구의 영웅으로 등극한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남편과 헤어져서 Two jobs 또는 Three jobs을 뛰면서 아들을 양육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장 프로로 진출할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권고에 따라서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물론 미식축구 장학생이었습니다. 연일 보도되는 바에 의하면 워드는 한국인과 한국음식을 좋아하고, 프로 진출을 못한 친구들에게 거금을 정기적으로 지원도 하고, 자동차도 사주었다고 합니다. 훌륭한 시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서 “엄마, 왜 나는 검어요?”라는 동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어려서 왜 한국에 사는 여자 아이가 검둥이가 되었는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검둥이라는 놀림에 냇가에 앉아서 돌로 손등을 피가 나도록 문지르던 소녀, 집에서 엄마가 묻습니다. 왜 손에서 피가 나느냐? 소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묻습니다. “엄마, 왜 나는 검어요?”6.25전쟁 때 한국에 왔던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의 슬픔과 고통을 그린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아무 죄없는 아이는 무조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자비한 조롱과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할 때입니다. 부대에 흑인 혼혈 처녀가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가끔은 백인 혼혈 처녀도 우리 사무실에 놀러오곤 했습니다. 그 백인 혼혈 아가씨는 키나 몸집이 참 크고 눈과 코와 입 등이 시원시원하게 잘 생겼었습니다. 머리는 검었지만 피부는 완전히 백인이었습니다. 카투사 군인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제 주변에서 맴돌기만 하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차별하지 않고 편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이제 생각합니다. 미군 부대 주변에는 혼혈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도, 미군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인즈 워드 기사를 보면서 이런 기억들이 되살아났습니다. 

지금 한국에선 하인즈 워드를 맞이할 준비에 분주합니다. 항공사도 공짜 비행기표를 들고 접촉하고, 기업들은 광고 모델로 섭외를 하는 중입니다. 가난하고 불행했던 시절을 극복하고 미국인의 영웅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하인즈 워드 열풍에 뿌리 깊은 우리 민족의 배타적인 사고가 변화하는 계기가 될 듯합니다. 신문에 자성의 글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그런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된다면 하인즈 워드는 우리 민족에게 큰 공을 세우는 격이 될 것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영어에도 비슷한 격언이 있습니다. To Stand in Someone else\'s Shoes!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본다는 뜻입니다. 우리 이민자들은 소수자의 입장에서 당하는 억울함과 서러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말을 잘 못해서, 법 규정을 잘 몰라서, 관습을 잘 몰라서 겪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민자들은 쉽게 혼혈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말도 안 되는 짓을 했구만!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역지사지하면 훨씬 많이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기가 쉬워집니다. 못된 며느리도, 독한 시어머니도, 부부 사이에서도 역지사지면 긴장과 스트레스를 확 줄일 수 있습니다. 빗나가는 자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만할 때는 말이야. . .”하면 자녀들이 귀를 막고 멀뚱멀뚱 바라봅니다. 이해하기 더 어렵거든요. 

우리 크리스천들은 역지사지의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 자리로 초청해도 못 올라가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이해하시고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올라가야 할 십자가에 친히 오르셨습니다. 혼혈인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멕시칸이나 흑인들, 갓 이민 온 사람 등을 모두 역지사지하고 대한다면 예수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역지사지 못함으로 우리는 편협했고, 옹졸했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역지사지하시어 예수님을 많이 닮으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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