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본디오 빌라도의 갑질

황의정 목사 0 10,900 2018.05.04 10:13

       사람은 권력 지향적입니다. 너도 나도 더 큰 권세를 원하고,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르면서 살고자 합니다. 더 높은 지위를 원하는 것도, 더 많은 돈을 원하는 것도 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보편적인 현상이라서 사람들은 권력지향성의 위험을 생각하지 못하나 봅니다. 권력은 만족을 모릅니다. 권력은 남용과 오용의 위험이 너무 큽니다. 큰 권력일수록 그 여파가 크고 파괴적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힌 날 밤새도록 끌려 다니면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실세였던 안나스 전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갔습니다. 사형에 해당하다는 판결을 받고서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려갔습니다. 안나스도 권력을 휘두르고, 가야바도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사형을 집행 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을 좌지우지하면서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로마 통치하에서 스스로 사형집행권이 없었기에 빌라도에게 가서 생떼를 썼습니다. 민중을 선동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강도 바라바는 석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뒤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적어도 세 번을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요한복음 18:38절, 19:4절, 그리고 19:6절). 그런데 빌라도가 이상한 말을 합니다.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19:10)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노력을 했었지만 결국은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엉뚱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요19:16).


           과연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줄 권한이 있었을까요? 로마 황제는 정말 총독에게 무죄한 사람을 죽일 권세를 주었을까요? 황제가 준 권한은 죄인은 벌하고, 의인은 보호하는 권한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로마 시민이 노예들을 재산으로 취급하여 죽이고 살리는 권한을 가졌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평민이지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빌라도의 권한은 무죄하다고 확신한 예수님을 석방시킬 권한만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모든 불의한 권세자들이 이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정적(政敵)을 제거할 때에는 없는 죄를 만들어서라도 죄인으로 정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당한 법을 집행하는 의로운 정권이라고 가장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김진홍 목사님이 아침 편지에 밝힌 내용입니다. 동두천 두레 수도원 건물을 짓는데 돈이 많이 부족한 중에 갑자기 정부에서 7,000여만 원의 보상금이 나왔답니다. 빈민 운동할 때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셨는데 이제야 세월이 지나 무죄가 확정되었고, 그 보상금을 보내준 것입니다. 오늘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 .”라고 신앙고백을 하는 성도들이 전 세계에 가득한 이유는 빌라도가 의로운 예수님을 자기 권한을 오용하고 남용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까닭입니다. 유대의 지도자들과 본디오 빌라도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사장님이라고 해서 회사 돈을 맘대로 사용할 권한이 있나요? 회사 운영은 나라가 정한 법에 따라서 운영해야 합니다. 재벌들이 비자금을 만들었다 하여 수사를 당하고 감옥에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없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법 망을 피하여 빼돌렸다가 들통이 난 것입니다. 이런 사장님들은 본디오 빌라도처럼 권세를 오해하고, 남용한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남편이라고 하여 자기 맘대로 아내를 박대할 권한이 있나요? 남편은 아래를 사랑하고 돌보고 보호하고 희생적으로 섬길 권한만 있습니다. 아내에게 무례하거나 무시하거나 학대할 권한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누가 그런 권한을 주겠습니까? 아내도 남편에게 대들고, 큰 소리를 지르고,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심하게 모독할 권한이 있습니까? 아내에게는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순종할 권한만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디오 빌라도 식으로 권한을 오해하고 남용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큰 소리를 치고, 매를 들고, 또 “어린 것이 뭘 알아?” 하면서 무시할 권한이 있나요? 부모에게는 자식을 사랑하고 희생적으로 돌볼 권한이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무관심하거나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권세자에게 반발하고 저항하는 백성이 많습니다. 사장님을 싫어서 이 회사 저 회사로 전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서로를 할퀴듯이 싸우다가 헤어진 부부가 많지요? 자기 인생을 망치기까지, 부모에게 대한 복수심을 발산하며 방황하고 방탕 하는 자녀들이 참 많습니다. 권세자의 권세 이해와 남용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본디오 빌라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위에 있는 권세자들이 본디오 빌라도가 됨으로써 세상이 불화하고 불행하고 불평등하고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이런 바르지 못한 권한 행사가 소위 “갑질”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부목사님에게 멘토링을 하는 것을 보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그렇게 하는 것이 갑질이에요!” 깜짝 놀랐습니다. 수긍하지 않았지요. 부목사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담임목사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였으니까요. 그런데 아내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부목사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이잖아요?” 그렇습니다. 인격을 존중받고, 능력과 수고를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한 모든 것이 갑질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갑질, 경제적 갑질, 부모의 갑질, 남편의 갑질이 모두 본디오 빌라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10:28).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도와주소서!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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