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생각 없이 듣기와 생각하며 듣기

황의정 목사 0 10,314 2018.05.04 10:00

         온 우주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우주에 가득한 별들과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으니 그 소리가 얼마일 것이며, 온 전하에 가득한 동물과 식물이 소리를 냅니다. 세상이 매우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이 모든 소리를 다 들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너무 큰 소리도 못 듣게 하시고, 너무 작은 소리도 못 듣게 하셨습니다. 가청주파수를 보통 20Hz에서 20,000Hz라고 합니다. 또 나이가 들면서 가청주파수가 줄어든답니다. 전도서 12장 4절에서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라고 한 말씀이 바로 귀가 어두워진다는 뜻입니다.


           자연의 소리는 참 아름답습니다. 새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안해집니다.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쉼과 회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숲 속에 들어가 누워있으면 이 모든 자연의 소리가 들려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어루만져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닷가에 홀로 서 있으면 출렁이는 파도와 바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합니다. 가슴 속 깊이까지 시원하게 뻥 뚫리고, 세상 근심이 다 날아가 버리는 해탈을 느끼게 합니다.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들을 때에 더욱 가까이 들립니다. 생각을 하려고 하면 소리가 도망가 버립니다. 잘 들으려고 애를 쓸수록 잡소리가 끼어드는 느낌입니다. 오로지 자연의 소리에 나의 숨소리를 보태어 하나가 되는 체험으로 족합니다. 신선이 따로 없지요. 현대인은 이 자연의 소리를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치유는 멀기만 하고 상처는 더 깊어지는 것이겠지요.


           세상에는 인공의 소리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자동차 소리, 기차소리, 비행기 소리 등이 폭군처럼 우리를 사정없이, 쉼 없이 두들겨 팹니다. 자동차 사고라도 날 때면 그 무섭고 사나운 소리는 우리 온 몸을 소름끼치게 하며 움츠러들게 합니다. 소음(騷音)이지요. 살면서 이런 소음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뉴욕에 갔을 때 전철을 여러 번 타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만든 전철이라 그런지 정말 소음이 컸습니다. 서울의 전철은 아주 양반입니다. 그 속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무아지경에 빠져있었습니다. 소음이라도 예의가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겸손이 물러납니다. 소리 세계의 예절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살아있는 소리는 잠깐 생각을 놓는 순간 존재를 드러냅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참 많이 들립니다. 그냥 조용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부지런히 말합니다. 소곤소곤하다가도 곧 큰 소리로 말하게 됩니다. 조금 열정이 일어나면 더욱 큰 소리가 납니다. 상대방의 주의를 사로잡기 위해서 소리끼리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 내 소리가 저 소리를 이겨야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마주앉으면 모든 소리가 차단됩니다. 오로지 사랑하는 이의 소리만이 들립니다. 하지만 관심 없는 사람과 마주앉으면 왜 그렇게도 주변의 소리가 모조리 들리는지요. 내 생각에 따라 소리들이 알아서 지혜롭고 예의바르게 처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생각하며 들을 때에 불필요한 소리가 사라집니다. 생각하며 들을 때에 내가 원하는 소리만이 들립니다.


           그런데 소리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도구들 중에 가장 집요한 것이 TV와 라디오 같습니다. 뉴스와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 등으로 잠시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들의 주의를 끌어보겠다고 몸부림을 치는데 참 귀엽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 찬란한 색으로 옷 입고 다가옵니다. 사람들의 주의력 집중 능력이 15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15분 이내에 반드시 주제와 배경과 음악을 바꾸며 현란한 변신을 합니다. 잠시 방심하면 참을성 없는 시청자는 리모컨을 꼭꼭 눌러 수백 개의 채널 을 넘나드는 방랑자가 되어버립니다. 스토리가 있는 소리를 만들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생각하며 보면서 듣습니다. 함께 즐거워하고, 분노하고, 울면서 소위 공감적 듣기를 합니다.


            최근에 드라마 [피노키오]가 막을 내렸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가차 없이 길어지는 피노키오가 있지요? 거짓말을 하거나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방송 기자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해서 봉사하는 기자들이 진실만을 보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처음부터 피노키오는 기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에 부딪칩니다. 백성들이 생각 없이 듣기 때문에, 들리는 대로 믿기 때문에, 기자들은 유혹을 받습니다. 소위 가진 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조작 또는 왜곡된 뉴스를 무차별로 방송합니다. 이렇게 위기를 넘기면서 죄 없는 사람에게 없는 위기를 만들어줍니다.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뉴스와 꼭 들어야 하는 뉴스를 누가 선택하는 것이지요? 생각 없이 방송 뉴스를 듣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항상 독재자들은 방송국과 신문사를 장악하여 지배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눈이 되고 귀가 되어야 할 방송과 신문으로 오히려 백성들의 눈 가리고, 귀 막는 것입니다. 들려주는 대로 믿으니까요.


           듣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며 들어야 합니다. 들을 것과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말세에는 자기의 사욕(私慾)을 좇기 위해 스승, 현대어로 하면 고문이나 멘토를 많이 둔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생각하며 들으시나요? 들으시며 생각하시나요? 넉 놓고 들어야 할 자연의 소리는 편히 들으세요. 자주 들으세요. 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야 할 인공의 소리가 너무 큽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10:17)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미움을 들으면 미워하게 됩니다. 거짓도 자주 들으면 진실로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소리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소리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소리에는 의도성이 있어 보입니다. 듣는 것은 믿음을 지배하고, 믿음은 인생을 지배합니다. 생각하며 들으세요!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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