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나는 웃고 세상은 울어야 한다!

황의정 목사 0 966 2018.05.04 09:55

       미주성결교회 남가주 지역에 있는 교회들의 아름다운 전통 중에 하나는 원로목사님들을 위한 위로회를 갖는 것입니다. 평생 목회에 헌신하시고 70세 어간에 은퇴하신 믿음과 헌신의 위대한 삶을 사신 목사님과 사모님들을 뵈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한 우물을 파고 은퇴를 하셨다면 존경받을만하지만 특별히 미신의 나라에서 일찍 예수님께 헌신하여 목회를 하셨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또 가뭄에 콩 나듯 한국 사람들이 여기저기 띄엄띄엄 사는 미국 땅에서 70년대부터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신 분들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외감을 느끼게 합니다. 지금은 교회를 개척하면 불신자를 전도하는 경우보다 기존의 신자들이 합세하여 교회를 세우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옛날에는 어디 전입하는 신자가 그리 많았습니까?


          성광회는 은퇴목사님들의 모임입니다. 서울신학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수학하신 대 선배님들이 회원이십니다. 매년 위로회를 12월 첫 월요일과 화요일에 개최하는데 금년에는 Dessert Hot Springs에 있는 현대호텔에서 모였습니다. 실제 회원들은 훨씬 많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못 참석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지방회 임원이 되어 3년 연속 섬기게 되었는데 매년 교회들의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불경기로 인하여 교회 재정들이 악화되고 있지만 어르신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더욱 풍성하고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넉넉하게 쓰고 남아 가정마다 금일봉을 드리니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손이 부끄러웠지만 크게 기뻐해주시니 감사했습니다.


            후배 목사님들이 여러 대의 자동차로 모시는데 목사님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시종일관 믿음의 말씀이고, 감사의 고백이요, 기특한(?) 후배 목회자에 대한 칭찬이 이어집니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죽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잘 달려왔으니 골인지점에서 멋지게 테이프를 끊어야겠다는 달리기 선수의 각오와도 같다고 할까요. 사우스베이 선교교회 원로이신 이기홍목사님께서 인사말씀을 하시는데 마음 깊이 새겨진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는 울고 세상은 기뻐서 웃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을 때는 우리는 기뻐서 웃고 세상은 울어야 합니다!” 아, 그렇구나!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죽은 호랑이보다 살아있는 개가 낫다”는 말처럼 인생들은 이 세상을 떠나기 싫어합니다. 오직 구원받은 백성만이 웃으며 떠나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보다 훨씬 나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습니다.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산 사람만이 세상이 울어줍니다. 목사님들은 함께 예배드리고, 간증을 나누고, 화기애애한 식탁의 대화, 온천탕에 들어앉아서 나누는 담화. . .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지방회장이라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에 요단강 바닥에서 주워다가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보고 “후일에 너희 자손들이 묻거든. . .” 하나님의 기적을 이야기해주라는 말씀에서 영감을 얻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5000년 전 벽화의 낙서를 해독했더니 “요즘 아이들은 싸가지가 없어!”였답니다. 중년의 목회자들 눈에 후배들이 영 눈에 차지 않고 부족해만 보이는데 원로목사님 사모님들 눈에는 우리들도 얼마나 부족해보일까요? 후배들은 일반적으로 선배님들보다 학벌은 화려해졌는데 성경을 잘 모르고, 기도가 더 깊지 못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사역에 너무 무기력한 것이 아닌가 자괴감에 시달립니다. 미국 교회 평균 신자 수가 75명이고, 제일 크다는 침례교단도 평균 신자 수가 77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대형교회가 많은 한국교회의 현상 덕분에 절대다수의 목회자들이 교회가 작다고, 나는 작은 교회 목회자라는 열등감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이상적인 교회는 어떤 크기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회자 한 사람에 몇 명의 신자를 맡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준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약시대에는 12지파 중에 레위 지파가 성직자입니다. 그러니까 성직자 한 사람이 11명을 맡아서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예수님께서 제자 12명을 키웠지만 한 사람은 배반하고 11명이 끝까지 헌신하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구약과 신약에서 모두 목회자 한 사람에 11명이 이상적인 수가 아닐까요? 목사 부부가 22명을 담당하면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대부분의 교회는 이 계산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집니다. 평균 크기인 75명 교회에는 담임목사님과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대학부 사역자가 있어야 하거든요. 장년 125명이 출석하면 미국 전체 교회들 중에서 상위 5%에 든다는 통계도 있거든요. 이런 현실에 만족하자는 것이 아니라 실상이 이런데도 목회자들이 비현실적으로 작은 교회 콤플렉스에 걸려있다면 교회의 건강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지요. 대다수의 지도자가 열등감에 시달리는 집단이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목회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후배들이 선배님들께 묻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어떻게 중생하셨습니까?” “어떻게 성결하셨습니까?” “어떻게 성령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셨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세상에 정 주지 않고 사셨습니까?” “어떻게 목사님 사모님은 평생 한 마음 한 뜻으로 사셨습니까?” “어떻게 가정과 사역의 위기를 극복하셨습니까?” 묻고 싶은 질문이 얼마나 많은지요.


           유대인 가정에서는 안식일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대화를 한답니다. 가장 나이 어린 자녀가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가장 연세 높은 어른께서 답변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물을 것인지를 어떻게 압니까? 어머니가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베푸신 기가 막힌 사건들을 신이 나서 설명을 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신앙의 대물림이 이루어집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말씀해주세요. 후배들이 묻거든 목사님 사모님의 그 삶과 사역의 진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묻지 않거든 “이렇게 물어보게!” 하시고 답변해주세요. 그래서 목사님 세대에 역사하신 하나님이 후배들의 삶과 목회에 강력하게 나타나게 해 주세요.


           원로 목사님, 사모님, 질문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웃으며 세상을 하직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살면 우리가 죽을 때 세상이 크게 울까요?” 대답해주실 것이 많으시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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