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다른 관점(Viewpoint, 觀點)에서 보면. . .

황의정 목사 0 1,664 2018.05.04 09:53

          제가 어느 날 하늘을 보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1년을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던 우리 집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드나들던 그 길에 그렇게 큰 나무가 서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세코이야 파크에 가서 땅에 눕다시피하여 세계에서 제일 키 큰 나무 사진을 찍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운전할 때는 조심조심했는데 그 날 보니 푸른 하늘이 그렇게 넓고 높고 아름다웠습니다. 탄복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시지요? 그 날 저는 허리가 아파서 주일 예배도 못 드리고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다가 오후가 되어 들것에 실려 나가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갔습니다. 들것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본 것입니다. 아픈 것도 잊고 생각이 깊었습니다.


            뉴욕 센트럴 스테이션에 가면 돔으로 된 대합실 천정에 멋진 그림이 그려있습니다. 하늘의 별자리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별자리가 거꾸로 되어있습니다. 작가가 하늘 위에서 별자리를 내려다 본 대로 그렸다는 것입니다. 사진작가의 눈은 보통 사람들과 다릅니다. 평소에 절대로 보지 못할 각도에서 사물을 보고 카메라에 담아냅니다. 거기에 순간 포착의 감각을 더하면 예술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헬리콥터가 환자를 수송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헬리콥터에서 찍은 도시는 땅에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지 못한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중학교 때 미술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교탁에 석고상을 올려놓고 각자가 보이는 대로 그리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데 선생님께서 교실을 돌아다니시다가 둘둘 말은 책으로 갑자기 한 학생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림에 자신이 없는 학생이 옆 자리에 앉은 학생의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앉은 자리가 다르니까 당연히 관점(보는 지점)이 다르고, 그래서 모두의 그림이 독특해야 하는데 옆 자리 학생의 그림을 복사하였으니 금방 들통이 난 것입니다. “아, 같은 석고상인데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구나!” 신기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견해가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사물과 사건을 보고 해석합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입장과 해석을 절대화하여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의견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려합니다. 나와 달리 생각하거나 다른 입장을 취하면 거부하고, 원수를 삼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원고의 말이 다 옳은 것 같으나 피고가 와서 밝힌다”(잠18:17)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발하는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억울하고 손해를 보았다고 느끼니까 고발하겠지요. 하지만 상대방이 와서 입장을 밝히면 누가 정말 옳고 그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자식의 관점과 부모의 관점이 다릅니다. 자식은 부모님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그런데 부모님들 중에 자녀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전혀 주지 않으시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부모님들은 “나는 늙어서 자식들 신세지고 살기 싫어!” 하면서 자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효도하여 매월 생활비와 용돈을 드리는 것이 좋다고 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복을 주셔서 오래 살면서 그 자녀들의 효도를 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 봉양을 힘겹게 생각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잘 못된 관점입니다. 부모님들도 자녀들에게 부담스런 존재가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옛날에 “공부 잘하면 선생밖에 못 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직업의 종류가 많지 않을 때는 그 말이 일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훨씬 학문과 과학이 발달하고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사회가 복잡해져서 머리 좋아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 참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공부를 너무 잘 하던 사람이 선생님이 되면 보통 학생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야 이 돌대가리들아! 이것도 모르냐? 이것도 이해를 못해!” 이런 말을 많이 들으면서 학교를 다녔지요.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너희들 머릿속에는 똥만 가득 들어있다!” 모멸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준으로 내려와서, 보통 학생들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한 걸음씩 이해시키면서 가르치는 분입니다. 선생님의 관점, 머리 좋은 학생의 관점을 잠깐 제쳐두고, 공부 못하는 학생의 관점, 보통 수준의 학생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하다 보면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 진리, 이 엄청난 사랑의 복음을 왜 안 믿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어쩌면 그렇게 교회에 대하여, 신자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면만 보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지 안타까움을 너머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믿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신자의 입장, 불신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신자들이 참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놀지도 못하고 휴일(주일)마다 교회에 가고, 그 금쪽같은 돈을 교회에 다 바치고, 억울해도 할 소리 다 못하고 사는 것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요? 기도한다고 새벽마다 교회가 나가는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개구리가 올챙잇적 시절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역지사지의 지혜가 있습니다.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역지사지의 지혜가 있습니다. 처지를 바꾸어보면 관점이 달라지고, 이해가 달라지고, 현실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집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의 관점과 전혀 다릅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된 것도, 그 분이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그리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성숙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입니다. 아멘!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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