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사랑(愛)과 정의(正義)의 조화

황의정 목사 0 14,281 2018.05.04 09:40

        사람은 모든 피조물 중에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다 만드신 뒤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닮은 구석이 많으나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중에 하나님의 윤리적 속성에 해당하는 사랑과 정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무한한 사랑과 완전한 정의가 빈틈없는 조화로 공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피조물을 살게 하십니다. 생명과 호흡을 공급하시고, 치유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세월과 함께 어그러지고 약해지고 병들면 기꺼이 바르게 하시고, 고쳐서 강하게 하시고, 지속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지면에 가득하게 해주십니다.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불순종과 모든 종류의 악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정의의 법에 따라 상을 주시고 벌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도록 곁을 주셨습니다. 모든 지혜와 지식을 공급하시고, 힘과 능력과 권세를 주시어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고, 슬픔이나 애통이나 질병이나 이별이나 죽음이 없는 이상세계를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 완전하고 아름답고 불멸의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불의와 불순종과 불법과 부조화를 심판하십니다. 부족함과 연약함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입니다.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거역하고 따먹어버린 선악과(善惡果)는 사랑의 동산에 심어둔 정의의 상징이었습니다. 사랑으로 충분했던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정의의 심판을 요구하는 비극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남은 하나님의 정의에 의한 심판의 결과였습니다.


타락 이전의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나무가 서있었던 것은 사랑 안에 하나님의 정의가 공존했던 표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공존합니다. 발가벗음을 알고 수치심에 떠는 아담과 하와에게 짐승 가죽 옷을 입혀서 내보내셨습니다. 은혜와 용서로 옷 입혀서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랑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심판입니다. 사랑 안에 정의가 있고, 정의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어서 정의가 정의답고, 정의가 시행됨으로 사랑이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 정의가 있고, 정의 안에 사랑이 있어 무엇이 먼저인지, 무엇이 겉이고 속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있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사랑의 하나님도 알고, 정의의 하나님도 압니다. 하지만 사랑과 정의가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고, 강하거나 약하지 않고, 힘이 서 세거나 약하지 않고, 앞서고 뒤서지 않고, 높고 낮지도 않는 완전한 조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사랑의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다른 이는 정의의 하나님의 더 사랑합니다. 어떤 때는 사랑의 하나님을, 다른 때는 정의의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아무튼 우리들에게 사랑의 하나님과 정의의 하나님은 물과 기름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는 사랑하고 아버지는 훈육하는 것이 이상적인 부모의 역할일까요? 다정한 어머니와 엄한 아버지가 이상적 모델일까요? 제 모친은 사랑의 사람이셨습니다. 한없이 다정하시고, 용서하시고, 덮어주시고, 한 번도 자녀들의 허물을 입 밖에 내지 않으실 만큼 사랑이셨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저 인고의 세월동안 주기만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언제나 엄하고 무서웠습니다. 옳은가 그른가, 도리에 맞나 어긋나나가 항상 중요했습니다. 아버님은 정의로운 분이셨고,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지난 5월 임실 호국원에 모여서 부모님 합동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어머님께 사랑을 배웠고 물려받았습니다. 아버님께는 정의를 배웠고 물려받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우리 7남매 6형제는 아버님의 정의를 더 강하게 물려받았습니다. 똑똑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지만 용서하고 품어주고 덮어주는 일이 약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자녀들에게 한 쪽으로 치우친 부모가 아니라 사랑과 정의를 내면화해서 더욱 성숙한 부모가 되어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부모들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사랑에 치우치면 방종하게 되기 쉽습니다. 정의에 치우치면 자녀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소극적이 되기 쉽습니다. 이왕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면 사랑으로 치우치고 싶은 마음입니다만 다른 분들은 저와 반대로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더 많은 부모님은 늙어도 외롭지 않을 것이고, 정의가 더 많은 부모님은 도움이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자녀들에게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더 많이 받은 자녀는 낙관적이고 낙천적이 되며 용서하고 용납하고 더불어 살기를 즐길 것이지만 정의를 더 많이 배운 자녀들은 정죄하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스스로 고립되어 살기 쉽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희생하지만 정의를 강요당한 자녀들은 공격적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지옥에 떨어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롭기 때문에 모든 죄인을 심판하여 영원한 지옥형벌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사랑과 정의의 갈등이 에덴동산에서부터 십자가까지, 아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행복하시고, 정의의 하나님이 만족하실 방안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놓으신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죄인들에게 내리지 않고 아들에게 내리신 것입니다.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을 위해서 지칠줄 모르고 보내신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선지자를 돌로 치고, 죽이며,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을 이방인의 손에 붙이시고, 마침내 이방나라에 포로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이 사랑과 정의가 십자가 위에서 만났습니다. 사랑도 정의도 승리케 하고, 하나님도 죄인도 행복하게 한 만남이요 조화입니다. 정의를 품고 사랑이 이겼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삽니다. 용서하며 사랑합니다. 우리가 행복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아멘!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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