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기대감(期待感)의 위력(威力)

황의정 목사 0 1,226 2018.05.04 09:30

        사람은 기대에 부응하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적당한 기대감은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의욕과 창의력과 은근과 끈기를 만들어주는 신비한 보약입니다. 그래서 기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것입니다.


독일에서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은 항상 어린이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셨답니다. 그 이유는 이 어린이들 가운데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위대한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학생들 가운데 대통령이 나왔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부모님으로부터 무한한 기대를 받으며 자랍니다. 대통령도 되고, 의사와 변호사도 되고, 장군이 되고, 학자가 되어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영웅이 될 재목으로 기대합니다. 어린이들이 해맑게 웃고 부자라고 우쭐하지도 않고 가난하다고 위축되지도 않고 자랄 수 있는 것은 이런 어마어마한 기대감 때문일 것입니다.


자라면서 기대감이 현실적이 됩니다. 스스로도 현실적이 되면서 조절하게 됩니다. 문제는 부모님의 기대감이 너무 일찍 무너지거나 포기하는 것이며, 이를 자녀들이 눈치 채는 것입니다. 기대감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던 가상한 자세가 흐트러지고, 의욕이 상실되고, 스스로 보기에도 아무 짝에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자포자기 합니다. 사춘기에 타락하는 청소년들 대부분이 기대감의 상실에서 오는 방황 중이라는 것이지요.


           어떤 자녀들은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감당하지 못해서 몸살을 앓기도 합니다. 부모님의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성적도 안 되고, 성격도 아닌데 부모님은 자기 욕심인줄도 모르고 자꾸 몰아붙일 때 자녀들이 느낄 스트레스가 얼마겠습니까?


           목사는 성도들에게 기대감을 가지고 목회를 합니다. 마음껏 목회를 잘 하면, 그리고 성도들이 잘 따라 와주면, 반드시 이런 성도가 될 것이라는 이상형을 가지고 목회를 합니다. 물론 그 중간 목표를 여러 개 가지고 있어서 적절히 가르치고, 훈련하고, 격려하고, 일을 맡겨보고, 또 훈련을 하면서 인내합니다. 그러다가 현실에 매여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면 슬그머니 포기가 됩니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하면서 타협하여 기대치를 낮추고 싶어집니다. 옆에서 말합니다. 평신도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습니까? 목회자들도 그렇게 못 살지 않습니까? 할 말이 없지요. 그렇다고 동의하고 기대를 낮추어 성경과 동떨어진 목표를 세울 수도 없지요. 이만저만 고민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믿음에 많이 놀랍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정말 당황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고, 좌절되기도 했었습니다.


너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5:17)


너는 세상의 소금이다(마5:13)


너는 세상의 빛이다 (마5:14)


너는 성도(Saint)다(엡1:1; 고전1:2; 골1:2)


너는 의롭고 거룩하다(엡4:24)


너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요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을 자다(롬8:17)


너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베드로전서 2:9-10).

 


           하나님의 이런 선언은 결코 입에 발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빈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믿음의 표현이요 기대감의 표시이며, 더 확실한 것은 이것들이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사랑을 아는 우리가 역시 목숨을 내놓고 사랑하고 섬기며 복음을 전할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낯설고 물 설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할 자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집과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자기를 날마다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예수님을 따를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 기대대로 순종하여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었고, 우리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적당히 타협하여도 아주 기본만 지킨다면, 다시 말해서 주일예배 잘 참석하고, 헌금도 좀 드리고, 목회자에게 대적하지 않고 순종만 하면 됩니다. 밖에서는 어떻게 살아도 깊이 관여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허물을 드러내지 않으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무서운 죄악이 넘실대는데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타협하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동의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기대감으로 실망을 주고, 낙심과 좌절을 유발하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실수를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대책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 힘으로 기대에 부응할 것을 애초에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 .”(벧후1:3).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살 수 있습니다.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름대로 성자(Saint)가 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할렐루야!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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