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참 많습니다. 노래를 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 주변의 산천초목을 관조하는 것,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 가족들끼리 또는 가까운 친구들끼리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것 등등 무심코 행하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양약과 보약이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음식을 함께 먹는 즐거움이 제일 크지 않을까요?
먹는 것 자체도 즐거움이지만 먹지 못했을 때 우리는 사는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고 말했습니다.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란 말은 배고프면 아름다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수련회나 여행 중에는 잘 먹어야 합니다. 먹는 것이 부실하면 쫄쫄 굶다가 왔다는 생각 밖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예로부터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어느 저자는 인류가 하루 세끼를 배불리 먹고 살게 된 것이 불과 몇 십 년에 불과하고, 기껏해야 100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아직도 전 세계 인구의 2/3는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로 연명합니다. 그들의 먹거리는 너무 부실해서 각종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립니다. 제 명대로 살지 못해서 평균 수명이 형편없이 짧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 왕궁에서 주는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고집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육식이 주식인데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벨론에서는 짐승을 잡으면 모두 바벨론 신에게 제물로 바친 다음에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다니엘과 친구들은 우상의 제물을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네 명의 젊은이들에게 특별한 지식과 재능을 주시어 높은 지위에 오르게 하신 것도 이런 갸륵한 신심(信心)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우상의 제물인 고기 먹는 것에 대하여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아무 문제없다고 주장하여 성도들이 두 파로 나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질문을 받고 고린도전서 8장에서 자세하게 답변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먹어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자들이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고, 또 우상의 신전에까지 가서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고기를 먹으면 믿음이 약한 성도들에게 시험이 되어 양심을 속이는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도의 신앙을 위해서 우상에게 바쳐진 것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게 않게 하리라”(고전8:13)고 선언하셨습니다.
다니엘의 문제는 유대인이 이방 나라에 살 때에 생긴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에 발생한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감사하며 먹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이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바친 다음에 먹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합니다. 음식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념품이나 생산물을 우상에게, 사탄에게 바치는 일이 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구약교수님께서 흥미로운 강의를 하셨습니다. 물에 뜨는 하얀 색 아이보리 비누는 사장이 자기의 영혼을 사탄에게 팔고, 사업을 축복해주기를 빌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누 포장지에 자그마한 동그라미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을 확대하니까 666이 새겨져있었습니다. 피터 와그너 교수님은 선교지에서 사 온 기념품들이 우상에게 바쳐진 것이어서 미국에서 볼리비아 토착민들이 섬기는 귀신이 나타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어떻게 안전하게 먹고 즐길 수 있을까요? 식사기도가 해답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것이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때에 우상에게 바친 것이 파괴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다시 바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거룩한 음식, 안전한 먹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전4:4)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아기를 하나님께 바치는 헌아(獻兒) 예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유아세례(乳兒洗禮)를 베풀기 때문에 없어졌지만 부모가 갓난아기를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양육하겠다고 하는 예식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바쳐진 아기의 생명을 책임지고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식사기도는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에게 큰 도전입니다. 혼자 식사할 때는 몰라도 식당에서 남들이 보는 데서 식사기도를 드리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깊은 의미를 깨닫는다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식사기도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것이 아니라 하여도 그냥 일반 음식을 먹는 것과 하나님께 바쳐진 구별된 음식을 먹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음식을 먹어야지요.
또 한 가지 식사기도의 기적이 있습니다. 물은 육각수가 건강에 좋다고 하지요? 그래서 비싼 정수기로 육각수를 만들어 마시려고 합니다. 하지만 육각수는 원망, 불평, 불만, 비난, 분노의 소리가 들리면 육각수가 깨져서 안 좋은 물이 됩니다. 하지만 정수기를 통과하지 않은 물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 곧장 육각수로 변합니다. [물은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읽었습니다. 우리 몸도 70%가 물이고, 만물이 물 가운데서 만들어졌잖아요.
맘이 상해서 식사하면 체하고, 소화가 잘 안됩니다. 산해진미도 그림의 떡이 됩니다. 하지만 볼품없는 음식도 감사하며 즐겁게 식사하면 맛있고, 소화도 잘 되죠? 마음이 분주하고 상했을 때에도 음식을 앞에 놓고 잠깐 동안 깊은 감사를 드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얼렁뚱땅 해치우는 기도가 아니라 진정 기적을 창출하는 기적의 식사기도를 드리세요. 할렐루야!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