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한국식 민주주의! 개발 독제! 의적 홍길동! 이런 말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가 깊습니다. 우리 사회에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정당화하는 뿌리 깊은 병폐를 드러내는 말들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짙게 물들어버린 민족 사상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어떻게든지 좋은 대학만 가라. 공부만 잘하면 부모님께 무례해도 괜찮다.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괜찮다. 탈세를 해도 헌금만 많이 하면 된다. 도둑질을 해도 잡히지만 않으면 괜찮다. 지금 한국은 청년 실업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회사에 취직한 사람들의 30% 정도가 처음 몇 달 안에 사표를 던지고 나간답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할 지적 능력은 갖추었는데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인내하여 적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일 것입니다.
의적 홍길동! 부자들은 도둑이요 가난한 백성들은 뼈골 빠지게 일만하고 약탈과 수탈을 당하여 가난하니 불쌍한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부자들에게서 도둑질 강도질을 해서라도 빼앗는 것은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내리는 의로운 심판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장물(臟物, 도둑질한 물건)을 받으면 자신의 잃어버린 몫을 되찾는 것이라는 맹랑한 논리 아닐까요? 그래서 홍길동을 의로운 도둑(의적, 義賊)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에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의로운 도둑”이라고 정의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80년대 한참 대학가에서 데모를 많이 할 때에 무탄무석, 유탄유석-최루탄을 안 쏘면 돌을 안 던지지만 최루탄을 발사하면 돌을 던지겠다는 학생들의 재치 넘치는 선전포고였습니다. 원래 이 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돈이 있으면 무죄요, 돈이 없으면 유죄가 된다는 말을 응용한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앵무새처럼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철저히 조사하여 혐의 사실이 드러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 말을 하는 당사자도 믿음 없이 해보는 소리 아닐까요?
얼마 전에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의 베스트셀러 중에 “부끄러운 A 학점보다 정직한 B 학점이 낫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정말 많은 사람이 읽었답니다. 목사님들이 책을 써서 경제적으로 이익을 보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은데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우리 사회가 목적도 좋고 수단도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아니, 그러려고 안간힘을 쓰는 증거겠지요.
하나님은 참 고지식하신 분이십니다. 지혜는 많으셔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시지만 목적과 수단의 조화에 목숨을 거신 듯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이는 선한 것입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선한 목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시되 가장 천한 곳 동굴처럼 생긴 마구간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을 인류의 죄를 뒤집어 씌워서 죄인 중의 가장 큰 죄인을 만들어 십자가에 처형하셨습니다. 무시무시한 수단을 동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자기 마음대로 하실 수 있으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든지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하느냐고 항의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스스로 정하신 공의로운 질서를 어기지 않으시고, 누가 하나님께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그 질서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목적을 들어 수단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목적에 현혹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스도인들, 참으로 신앙하고 참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목적과 수단의 조화를 고민하였습니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고 하든지, 나무도 나쁘고 열매도 안 좋다고 해야 합니다. 훌륭한 목적 군이 추한 수단 양을 만나면 재앙입니다. 훌륭한 수단 양이 추하고 못난 목적 군을 만나는 것도 슬픈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는 것이 성도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다? 성경은 좋은데 기독교인은 싫다? 혹시 목적은 화려한데 수단이 초라하고 빈약하지는 않나요? 화려하고 장엄한 예배당을 지어도 회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왜지요? 믿음과 삶이 조화로워야지요. 그게 고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민이 날로 깊어갑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은 점점 빠르게 다가오는데 교회는 날로 초라해져가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하나님, 우릴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우릴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