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사역 초기의 일입니다. 그 때는 치유사역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따라다녔습니다. 자기들이 치유 받을 사람을 데리고 와서 관찰을 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과 함께 한 30대 초반의 자매가 치유를 받겠다고 오셨습니다. 왜 치유상담을 받으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 결혼하고 싶어요!” 답이 간결하고 명료했습니다. 왜 그 동안에 결혼을 못했느냐고 물었지요. 사실은 자기가 몇 번 프러포즈를 받았답니다. 배우자의 조건을 12가지를 적어놓고 어려서부터 기도를 했는데 10가지 정도가 맞는 정말 훌륭한 분들이었답니다. 자매는 키도 보통보다 크고, 얼굴이 갸름하고, 몸매도 예뻤습니다. 일찍 이민을 와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미국에서 공부하고, 좋은 직장을 다녀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신앙 좋은 총각과 교제를 하다가 속으로 결혼할 맘을 먹고 있는데 프러포즈만 받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No!”가 나와서 헤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자기가 No! 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인데 쪼그리고 앉아서 세수 대야에 머리를 감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옆에서 엄마가 머리를 감겨주시는 것입니다. 왜 이 장면이 떠올랐는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자매가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낍니다. 엄마가 머리를 세게 감아주면서 화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너 같은 계집애를 누가 데려가겠느냐? 이 년아!” 어린 소녀는 엄마의 이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아무도 나를 데려갈 사람은 없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거절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사람을 거절합니다. 거절을 당하는 것 보다는 내가 거절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프러포즈를 받는 그 중요한 순간에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뛰어나와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이혼은 자녀들에게 큰 상처를 남깁니다. 죽음이 충격을 100으로 봅니다. 가장 큰 충격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이혼의 충격이 100입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죽음을 자기를 버리고 떠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자기가 잘 못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죽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의 죽음은 자기 탓이라고 무의식중에 받아들입니다. 이혼도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다투고 싸우는 것도, 결국 헤어진 것도 자기가 말을 안 들어서, 공부를 잘 못해서 부모님이 싸우고 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립니다. 이런 어린이들 중에는 모태에서부터 받은 거절의 상처가 있을 경우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러시아 선교사님이 교회에서 한 남매를 보고 저를 소개하셨습니다. 자기가 보니까 이 남매가 주의가 산만하고, 교회에서 예배도 잘 안 드리고, 또 표정도 정상으로 보이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아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를 치유하는 중에 임신 5개월이 되자 두 손으로 목을 꽉 쥐고 숨을 쉴 수 없다고 괴로워했습니다. 옆에 계시던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아들 임신 5개월 때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다고 하시더니 갑자기 놀라서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합니다. 엄마가 부흥강사 전도사님이셨습니다. 임신 5개월에 집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배가 부른 것이 부담스러워 복대를 하여 배를 칭칭 감고 집회를 인도하였던 것이 생각난 것입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나만 생각하고 너를 생각하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엄마를 용서해라!” 그러자 아들이 엄마를 용서한다고 고백하면서 스르르 숨이 터졌습니다. 이 아들은 엄마가 자기를 불편하게 여기고, 부담스럽게 여긴다는 메시지로 해석하여 거절의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도록 엄마와 친밀해지지 못하고, 주의가 산만하고, 문제만 일으키는 아이로 자랐던 것입니다.
한국의 자녀들은 아빠와 친밀해지기를 참 어려워합니다. 대부분 무덤덤한 관계로 살아갑니다. 너무 흔하니까 부자관계는 다 그런 것이려니 하고 삽니다. 그러나 실상은 뱃속에서 아버지의 화난 목소리, 큰 소리를 들으면서 거절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친구 같은 아버지가 요즘 신세대 아버지상이라는데 옛날에야 어디 그랬나요? 아버지는 항상 무섭고, 화가 나 계시고, 말이 없으시고, 집에 오시면 신문이나 TV를 보시고, 아니면 주무시는 분이었잖아요? 거절의 상처가 있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거절의 상처를 대물림합니다.
상처를 준분들을 용서할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나를 거절한 사람들을 이해하면 용서가 수월해집니다. 거절당했다는 것이 일부는 오해였음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용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 대로 받아주심을 기억하고 우리도 우리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용납하는 사랑으로 거절을 치유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그래서 나도 나를 소중하게 받아줍니다. 할렐루야!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