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국어(國語) 선생님의 교훈

황의정 목사 0 12,498 2018.04.21 09:12

어려서부터 참으로 많은 선생님들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고, 어떤 선생님은 얄밉게 매를 때리던 모습이, 또 어떤 선생님은 자기 종아리를 때리면서 코흘리개들을 훈계하시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게 여러 가지 면에서 잊지 못할 선생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이 저를 특히 사랑해주셨다 거나 뭐 그런 개인적인 인연보다는 그냥 어렵고 무섭고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은 좋으셨던 그런 분입니다. 그 분은 국어를 가르치시던 김 선생님이셨습니다. 

김 선생님은 우리 면(面)에서 소문난 큰 부자셨습니다. 양조장 소유주셨거든요. 당시에 자전거도 귀한 때에 술(막걸리)을 여러 고을로 실어 나르는 경운기가 여러 대였거든요. 그 때는 선생님이 부자라는 것이 부러웠지만 양조장을 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도 몸집이 좋으셨고(지금 생각하면 비만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항상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다니셨습니다. 또 책이 많다고 소문 난분이었습니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집에 있는 오래된 책들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서재에서 전국의 강과 산을 주제로 지은 시집을 한 권 제출했는데 책 욕심이 많으셨던 이 선생님이 끝내 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책이 많다고 할 때에 받았던 신선한 경외심 같은 것이 사라진 계기가 되었었지요. 선생님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지요. 그 후에 이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의 교훈 한 가지는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에 국어 책은 매학기, 매 학년 예외 없이 새까맣게 변해있었습니다. 질이 좋지 않은 연필을 날카롭게 깎아서 깨알 같은 글씨로 모르는 단어를 찾아서 사이사이에 적어 넣었습니다. 모르는 단어는 예외 없이 밑줄을 치고 그 밑에 단어의 뜻을 적어가야 했습니다. 공책에 적어가는 숙제는 주로 방학 때에 했지만 매일 호롱불 밑에서 전과나 수련장의 낱말 풀이 코너를 보거나 사전을 찾아가면서 정성스레 적어 넣었습니다. 무작위로 지명하여 단어 뜻을 물으실 때에 대답을 못하면 지체 없이 막대기로 머리를 치셨습니다. 어떤 때에는 단어의 뜻이 여러 가지인데 하나만 달랑 적어왔다가 문맥에 맞지 않는 답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좁은 공간에 1, 2, 3을 적어가면서 낱말 뜻을 적어 넣었고, 여백도 새까맣게 되었습니다. 연필심이 딱딱하면 잘 써지지 않고 종이만 찢어지고, 부드럽게 써지는 것은 글씨가 흐려지면서 알아볼 수가 없게 되기 일쑤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검정, 파랑, 빨강 색 볼펜으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말뜻을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김 선생님은 철부지 중학생들에게 바른 말 사용을 위해서 그런 고된 숙제를 매일 내주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비교적 단어의 정의(定義)를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며, 또 새 단어를 배우면 정의를 꼭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이 때의 훈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도 책상에 국어사전을 두고 찾아보곤 합니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한 번은 조약을 맺었습니다. 일본인이 조선 해변에서 내륙으로 10리까지 왕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4km가 아니라 40km까지 맘대로 왕래합니다. 항의를 했더니 일본인 왈, 일본은 1리가 4km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썼지만 서로 뜻이 달랐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말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서로 오해합니다. 충청도 출신 목사님이 경상도에서 저녁 심방을 갔다가 일어나는데 주인이 “목사님, 가입시다!”하기에 같이 가자는 말인 줄 알고 밖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 안에서 불을 탁 끄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고전14:8). 분명한 말을 해야 합니다. 오늘 날 기독교가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분명하게 외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여러 가지 좋은 말을 많이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지만 인간의 죄인임과 하나님의 심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오직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기쁜 소식의 소리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지적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죄가 난무한 탓인가요? 그럴수록 더욱 크고 분명한 소리로 깨우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분명하게 외치지 못하여 수많은 영혼이 매일 지옥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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