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개혁 신앙

황의정 목사 0 10,964 2018.05.04 07:02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잠깐만 돌아봐도 변화가 어찌나 큰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청소년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전화기를 들고 다닙니다. 그러나 1977년에 제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에만 해도 서울 한 동네에 전화기가 하나 밖에 없었던 곳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지금 그 유명한 강남지역의 잠원동이었습니다.

 

        요즘 전화기는 참 많이 발전하고 진화했습니다. 컴퓨터 기능을 거의 다 갖추고 있습니다. 전화기 한 대로 전화, 음악듣기, 이메일, 인터넷으로 전 세계 모든 자료를 다 검색할 수 있고, 전자책을 구입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성경과 찬송가도 전화기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운전할 때에도 전화기를 사용합니다.

어플(Applications)이라는 수백 가지의 기능들이 있어서 사용자의 수준에 따라 전화기 용도는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합니다. 새 것이 나오면 일단 거부하고 부정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변화를 앞장서서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뒤지다가 마침내 합류하게 됩니다. 변화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초기에는 퇴보하는 정도지만 결국은 소멸하게 됩니다. 잭 웰치는 조직 내부의 변화의 속도가 조직 외부의 변화 속도에 뒤지면 그 조직의 종말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변화의 역사에는 혁명적인 변화와 개혁의 변화가 있습니다. 15세기의 활자의 발견은 혁명적인 변화였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산업혁명이라고 합니다. 전기의 발명도 혁명적인 발명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컴퓨터의 발견도 혁명적인 변화였습니다. 혁명이라는 것은 기존의 틀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 판을 짜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개혁은 기존의 틀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 변화입니다. 핸드폰이 개혁되어 수많은 기능을 통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용도가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변화는 물질문명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세계에도 일어나고 신앙세계에서도 일어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에 독일인 로마 천주교회 사제였던 마틴 루터는 95개 조항의 토론 주제를 비텐베르크 성당에 게시함으로써 타락한 로마 천주교회를 개혁하려고 하였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온갖 미신적인 행동이 보편적이 되고, 심지어 성 베드로 사원 건축비 모금의 방편으로 면죄부(죄를 용서받고 연옥에서 천국으로 즉각적으로 올라가게 하는 표)를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는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교리가 더 권위가 있었습니다. 공을 쌓아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 덕분에 검증할 수 없는 성자들의 유품을 구입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사제들조차도 성경을 갖지 못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혁명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로마 천주교회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토론을 통하여 정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천주교회로부터 정죄당하고 파면을 당하면서 생명의 위험에 처하게 되자 동조하는 세력들과 함께 혁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입니다. 오직 은혜로(Only by Grace) 구원을 받습니다! 오직 성경만이(Only Bible!) 최종 권위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Only by Faith!) 구원을 받습니다!

 

        마틴 루터 이전에도 루터와 같은 주장을 하면서 로마 천주교회를 개혁하려는 개혁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450년에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유럽에 책이 급속하게 늘어나게 되었으며,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급증하였습니다. 마틴 루터의 주장이 인쇄 매체를 통하여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100년을 넘으면서 정체에 빠지고 일부 부정적인 면모가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부흥기와 태평성대를 지나면서 순수한 신앙의 열정이 식어지고, 제도화되면서 기득권층이 생겼습니다. 성경적 신앙보다는 어느덧 전통을 만들어 스스로 매였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너무 피상적으로 여기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게 된 듯합니다. 은혜로가 아니라 인간적인 공로를 주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이 때 우리는 종교 개혁의 전통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신교 신앙은 개혁신앙입니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매일 새롭게 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습관적 신앙, 형식적 신앙,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신앙,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는 신앙, 변화없는 신앙. . . 개혁해야 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종교개혁주일에 개혁을 함께 생각합니다. 주여,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날마다 새롭게 하소서!! 아멘!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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