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四季節)의 신비는 짧을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온 세상 만물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질서 정연하게 움직입니다. 색감에 둔감한 나도 계절에 따라 갈아입는 산천의 아름다움에 경탄할 때가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궁금합니다.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보면서 왜 추운 겨울에 홀딱 벗고 살까? 왜 무더운 여름에는 두껍게 껴입고 살까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군복무 시절에 늦가을의 색 바랜 잔디밭에 누워 앙상한 가지에 몇 개 잎이 달려 팔락거리는 것을 쳐다보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적나라하게 선 인간을 생각하며 바르게, 열심히, 그리고 지혜롭게 살아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로 결의를 다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구촌의 날씨는 정말 다양합니다. 우리 조국처럼 춘하추동(春夏秋冬) 4계절이 확연한 곳도 있고, 캘리포니아처럼 겨울이 시늉만 하고 지나가는 곳도 있습니다. 연중 추운 겨울만 있는 곳도 있고, 사철 벌거벗고 살아가는 정글 밀림지대도 있습니다. 저희 가족이 5년을 살았던 태평양 가운데의 사이판(우리 교회 복도에 있는 세계 선교지도 한 가운데에 있음)은 사철 해수욕을 할 수 있고, 사철 열대 과일이 풍성하여 농사짓지 않고도 거뜬히 살아갈 수 있는 에덴동산 같은 곳이었습니다. 거기도 살다보니까 4계절의 구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기(雨期)와 건기(乾期)로 나누는 계절 구분이 더 확실합니다. 최근에 알라스카에 계신 목사님과 통화를 했는데 밤 11시 경에 해가 져서 새벽 서너시면 해가 뜬답니다. 낮의 계절과 밤의 계절로 나누는지 궁금합니다.
신앙생활과 계절이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특히 여름이 되면 영적으로 깊은 체험을 하는 수련회를 하지만 실상 대부분의 성도들은 휴가와 여행으로 신앙생활이 헤이해집니다. 마음의 긴장을 풀고 쉬려고 할 때에 영적으로도 긴장이 풀리는 것입니다. 교회 출석도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여행 중에 주일이 되면 가까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역동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긴긴 겨울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던 씨앗이 봄기운에 기지개를 켜며 새싹을 키워내듯 하나님께 무관심하고, 내세와 영적인 것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살던 사람이 영적인 해빙기를 맞아서 깨어납니다. 더디지만 조금씩 자라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뽐냅니다. 행여나 다칠세라 정성스런 돌봄으로 섬기는 성도들의 사랑으로 자라갑니다. 봄을 지나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오듯 신기한 영적 세계, 기도의 세계, 찬양의 세계, 예배의 세계에 흠뻑 취하는 기간이 신앙의 여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때는 열매는 없지만 활기가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생활입니다. 지식도 자라고, 관계도 성장합니다. 눈에 보이는 열매를 보기는 아직 이르지만 내면적인 성장과 성숙의 계절입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시기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시기입니다. 푹푹 찌는 무더위를 견디면서 벼가 익어가듯 신앙 인격도 그렇게 자라갑니다. 이 시기를 지나 가을이 옵니다. 가을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충성과 헌신으로 사역하여 열매를 거두는 계절입니다. 내면적 성숙의 기초 위에 밖으로 드러나는 사역을 하는 계절이고,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고, 초신자를 양육하고 돌보아 성장하게 합니다.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구원합니다. 세상에서 선한 삶을 살아 그리스도의 명예를 높이고, 교회의 이름을 내는 계절입니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 종종 있지만 신앙생활의 겨울은 혹독한 시련기입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자라지 못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유지하면서 죽은 듯이 지내는 기간입니다. 이런 계절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겨울을 건너뛰지 못하듯 신앙생활에서도 겨울을 통과하는 때가 왕왕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정말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사는 나라는 4계절이 확연히 구분되는 나라들입니다. 추운 겨울만 있어도 잘 못 살고, 사철이 여름인 나라도 잘 못 삽니다. 추위와 더위가 교차하면서 산천초목이 건강하게 됩니다. 번성했던 벌레들이 죽어 농사를 망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겨울이 필요합니다. 억지로 겨울을 찾아갈 필요는 없지만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추운 겨울, 한 밤 중을 지나는 기간이 외롭고 두렵고 무섭지만 겨울을 지나면 단단해지고 담대해지고 거룩해집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고 중생(重生, 거듭남)의 시기는 봄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칩니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무럭무럭 성장하는 여름은 성결(聖潔)의 계절을 사는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가을은 신유(神癒, 성령으로 병고침), 즉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여 열매를 풍성히 맺는 계절과 같습니다. 겨울은 재림(再臨,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의 시기와 같습니다. 신앙생활의 춘하추동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4중복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계절을 살고 계십니까?
건강한 둘로스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