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거북이를 보내면서

황의정 목사 0 12,322 2018.04.21 09:06

96년에 저희 가족이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에 저희 식구는 여덟이었습니다. 저희 내외와 세 자녀와 엄지손가락만한 거북이 3마리였습니다. 고추장 병에 담아 온 거북이는 엘에이 공항을 통과하는 일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10여개의 가방과 책 짐을 싣고 나오는데 세관원들이 거북이를 보고 서로들 신기하다고 서로서로 말을 하고 웃고 하더니 그냥 통과시켜주었습니다. 

강아지를 못 키우게 하는 학교 기숙사에 살면서 거북이는 우리 가족에게 크고 작은 추억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여름에 목회자 수련회를 가면서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데리고 갔는데 유황 물에 담가두었더니 눈에 병이 나서 혼이 났습니다. 눈을 못 뜨게 되어 집사람과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다가 연구하여 고쳐주기도 하구요. 점점 커가면서 자주 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냄새가 지독하게 되었습니다. 9년을 함께 사는 동안 장정 손보다도 크고 두껍게 자랐습니다. 거북이와 정도 깊어졌습니다. 

냄새 때문에 종종 밖에 두고 잠을 잤는데 한 번은 너구리가 와서 거북이 뒷다리를 하나 잘라 먹었습니다. 혼비백산한 거북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이 집 저 집에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5월에는 2-3일 간격으로 너구리의 공격을 받고 거북이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죽어갔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한 마리가 뒷다리를 먹힌 상태에서 피를 너무 흘려 고통스럽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거북이 밥 사러 가면서 아까웠지만 의리(?)도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에 대한 공헌(?)을 생각하여 꾹 참고 두 통씩 사오곤 했었는데 마지막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를 사다가 항생제를 넣어 강제로 먹이기도 하였지만 소생의 희망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진지한 자세로 거북이 등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잘 못 돌봐주어서, 밤에 집안으로 들여놓지 못해서, 너구리에게 물린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하나님, 이 마지막 남은 거북이를 살려주세요. 친구들은 다 죽고 이 놈 한 마리만 남았습니다. 저희들이 게을러서, 잘 돌보지 못해서 이렇게 말 못하는 거북이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님, 짐승의 생명도 주님의 손에 달려있는 줄 압니다. 제발 이 놈만이라도 살려주십시오.” 한참을 기도했습니다. 방언 기도도 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 얼른 부엌으로 가본 저는 낙심이 되었습니다. 목을 든 채로 빳빳하게 죽어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면서 교회로 가는데 유월절 생각이 났습니다. 애굽의 열 번째 재앙이 선포되었습니다. 장자는 모두 죽는 것입니다. 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집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피를 바른 집 안에 있지 않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첫 아들들이 죽고, 짐승의 첫 새끼들이 죽었습니다. 어느 집 하나 초상이 나지 않은 집이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바로왕의 아들도 죽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안전했습니다. 피를 바른 집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거북이는 스스로 걸어 들어올 수는 없었지만 집 밖에서 밤을 보내다가 변을 당한 것입니다. 

자녀들이 자라서 대학을 가면 부모님의 슬하에서 벗어나려고 멀리 가고자 합니다. 부모님 아래 사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자유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자취 생활을 해 본 사람은 다 압니다. 부모님 해주시는 밥 먹고, 빨아주시는 옷 입고 학교 다닌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말입니다. 일어나라, 공부해라, 방 청소해라. . . 잔소리들조차도 정겹게 생각되면서 그리운 것입니다. 엄마가 요리해 주시는 밥과 반찬, 특히 좋아하는 찌개는 정말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요. 

예수님 안에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 안에 살아야 합니다. 기도와 예배와 교제 안에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하지만 강하게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혼자 밖에 나가면 위험합니다. 늘 예수님을 모시고 나가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했지만 거북이가 죽었습니다. 부상당한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거북이는 갔지만 우리는 그렇게 가면 안 됩니다. 거북이는 죽으면서 제게 이 교훈을 남기고 갔습니다. “예수님 안에 살아야 합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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