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믿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이 믿어지는 경우가 있다.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게 되는 경우나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하는 경우는 다 불행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서 생각과 인생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서 세계관과 가치관, 인생관과 삶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같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모두 동일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기사와 이적을 믿지 않습니다. 신앙의 내용을 이성과 경험으로 판단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오병이어의 기적, 그리고 병을 고치거나 죽은 자를 살린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이성적으로 그럴듯하게 해석합니다. 5병2어의 기적은 어린이가 순진해서 예수님께 자기 도시락을 내놓자 양심에 가책을 받은 어른들이 숨겨두었던 도시락을 내놓아 12광주리가 되었다는 식이지요. 동정녀 탄생은 미신적인 신앙으로 치부해버립니다. 이렇게 믿으면 병이 들거나 인생의 고난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도록 기도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단지 정신적인 위안일 뿐이고, 모든 문제는 스스로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인간적인 문제일 뿐이니까요.
신앙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 이 두 질문의 공통된 답이 창조와 부활일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 이 말씀을 믿을 수 있다면 창세기 1:2절부터 요한계시록 22:21절까지 못 믿을 것이 없습니다. 창세기 1:1절은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를 묻지 않습니다. 이미 계신 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선언하고 있으니까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누구냐? 어떤 분이냐? 그 분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이것만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우무 만물 안에 자신의 모습을 심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천지에 가득한 모든 것이 하나님을 알려줍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
이번에 이강천 목사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하나님은 참으로 아름다우신 분이고, 미를 사랑하시는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카메라에 담아 놓은 풍경은 대충 눈으로 보는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지요. 아, 하나님은 곳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놓으시고 감상하시는 분이시구나! 나도 이런 눈을 가지고 자연 만물을 살피는 습관을 기르고 안목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목사님께서는 거듭난 사람은 자연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말은 아름다움을 만끽하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증명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사랑에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물도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말에 육각수로 변하고, 저주하고 비난하는 소리에는 혼동과 갈등과 무너짐으로 반응합니다. 칭찬과 감사, 즐거운 노래 가운데서 꽃이 아름답게 자랍니다. 과실이 많이 달리고 크고 맛있게 자랍니다. 심지어는 저주의 말을 계속 듣는 나무는 말라서 죽기도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알 수 있지요.
자연은 모든 것이 완전한 조화를 자랑합니다. 계절이 조화요, 먹이 사슬이 조화요, 씨앗이 죽어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잎이 떨어지고 죽고 하는 모든 순환이 조화입니다. 조화가 깨어질 때에 아픔과 소멸이 옵니다. 밤과 낮이 조화요, 쉼과 노동이 조화요, 주고받는 것이 조화요, 암컷과 수컷이 조화요 낳고 죽는 것이 조화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조화 가운데 점점 풍성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이 조화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이 그가 지으신 만물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질서와 조화의 하나님이심을 아시겠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죽으신 아들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못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중에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지구와 그 안에 있는 모든 무생물과 생명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죽은 자 살리는 것이 대수입니까? 창조의 하나님을 믿으면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창조의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한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을 원래의 질서로, 원래의 하나님과의 관계로,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과 조화로운 상태로 회복하시려고 보내신 아들 예수, 그 아들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 짊어지고 죽은 신 뒤에 그 구원의 완성, 구속의 드라마에 클라이막스에 부활이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없이는 하나님의 창조물의 회복이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조차도 헛되어 우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 사건이 의미있는 사건이 되는 것은 부활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조신앙과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의 누릴 복이 무엇일까요?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부활의 능력이 동일하게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성부 하나님)의 영(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11). 창조주께서 아버지이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름다움, 조화, 사랑, 회복의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당당하고 확신에 차서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창조신앙과 부활신앙으로 험한 세파를 헤치고 나가시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Jesus is risen!
건강한 둘로스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