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복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누구를 만나는가는 그 인생의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이민사회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공항에 내릴 때에 누가 마중을 나왔는가가 그 사람의 직업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낯설고 물선 곳에 와서 말이 잘 안 통하는 나라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때에 공항에서부터 머물 곳을 소개하고, 운전면허 따도록 도와주고, 자동차 구입에서부터 아이들 학교까지 모든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까지 도와주게 됩니다. 식당에서 웨이터가 되고, 페인트칠을 하고, 자바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또 택시 운전을 하고. . .
유유상종(類類相從)이지요. 까마귀는 까마귀하고 놀고 백로는 백로하고 놉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립니다. 실패자는 실패자끼리 어울려 신세한탄을 하고 세상을 저주하며 울분을 토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끼리 어울려 더 나은 세상, 더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갈 지혜와 전략을 나눕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가 어떤 부류의 사람과 어울리는지를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많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나도 은연중에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전염되어 매사가 불만스럽게 됩니다. 우울한 사람을 자주 만나면 나도 우울해집니다. 하지만 밝고 명랑한 사람과 자주 어울리면 내 안에 있던 먹구름이 걷힙니다. 낙심했다가도 희망의 싹이 돋아납니다. 구름 너머에 있는 태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만남을 결정하는 자신의 의지가 있는가?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고 싫고 가 있음에도 사람을 만남에서 적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서 찾아가는 사람도 그렇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나는 것이 그렇습니다. 모든 만남은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거룩한 삶과 승리의 삶을 살고자 하면 반드시 만남에서 주도적이고 전략적인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부정적인 만남을 지속하면 내가 타락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만남을 자주하면 역으로 낙심하며 좌절할 수가 있습니다. 세네카는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이전보다 더 못한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만남의 부정적인 면이 강조된 말입니다. 하지만 좋은 만남으로 소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에너지를 충족시키는 만남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사역자가 긍휼의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성도, 병든 성도, 힘들고 어려워 끙끙 앓는 성도들만을 부지런히 보살폈습니다. 희생적인 돌봄을 받으면서도 이 사역자에게 깊이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자기 문제가 워낙 크니까 사역자를 배려할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 내에 건강한 성도들, 넉넉한 성도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운 성도들은 목사님의 돌봄을 더욱 원하면서 불평과 불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또 목사님의 돌봄을 받지 못한 성도들은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목사님께서는 자기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섭섭해 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우리 목사님은 부자들을 싫어하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목사님의 마음은 늘 어려운 성도들을 돕느라고 바쁘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탈진하게 되면서 양 쪽의 모든 성도들에게서 배척을 받게 되었습니다. 게을러서도 아니고, 사랑이 없거나 희생할 줄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소모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힘을 공급하는 만남과 내 에너지를 소모하는 만남이 있습니다. 내게 유익한 만남만을 고집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미숙한 것이며, 내 에너지를 소모하는 만남만을 고집하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에너지를 얻는 만남과 소모하는 만남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공급받지 못하고 소진만하면 모든 자원은 고갈됩니다. 정신력도, 체력도, 영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나를 치유하는 만남, 나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만남, 내게 지혜와 전략을 공급해 주는 만남 등 긍정적인 만남과 나의 위로가 필요한 만남, 내가 지혜와 전략을 나눠주어야 할 만남, 내가 치유해 주어야 할 만남 등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히 선택하여 만나야 합니다.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습니다. 진 겟츠(Gene A Getz)라는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9종류의 사람들을 만나셨으며, 총 만남은 184회라는 조사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긍정적인 사람들과의 만남은 53.7%이며, 부정적인 사람들과의 만남은 46.3%임을 밝혔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일반 대중들로부터 적극적으로 죽이려고 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많이 만났으면서도 끝까지 분노하지 않으시고, 사역을 포기하거나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제자들과 고침 받은 병자들과 사도들 같이 예수님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셨기 때문입니다. 수입과 지출에서 수입 비율이 좀 더 높기 때문에 항상 평안하시고 즐겁고 기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셨다는 결론입니다.
저도 장로님들과 몇 성도들을 만나면 항상 힘을 얻습니다.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습니다. 특히 상처받은 사람들을 많이 상담하고 치유하는 저로서는 이런 만남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말씀과 기도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받고 능력과 지혜를 공급받지만 이런 좋은 만남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는데 하물며 우리야 더 말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건강한 섬김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지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지혜입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저도 항상 오아시스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균형 있는 만남으로 행복하시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