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물물교환(物物交換)

황의정 목사 0 11,314 2018.05.03 09:12

계란 두어 줄, 참깨 한 말, 그리고 고추 말린 것 대여섯 근을 머리에 이고 5일 장에 가시는 엄마를 따라나섰습니다. 엄마는 농사지은 것으로 석유기름도 한 병 바꾸고, 비린내 나는 생선도 한두 마리 바꿀 심산이셨습니다. 운동화도 사줘야 하고, 더 이상 기울 수 없이 낡은 아이들 양말도 사야 했습니다. 철없는 아들을 데리고 가셔서 장터에 들어서면 시골 사람들이 깨끗한 옷으로 차려입고 구수한 사투리로 안부를 물으며 이리저리 다닙니다. 옷가게 앞을 지날 때는 아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싶고, 고깃간을 지나면 삐쩍 마른 새끼들에게 고깃국을 먹이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사지도 않으시면서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저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요. 점심때는 국밥 집에서 한 그릇 후루루 먹었습니다. 누워 계시는 아버지 드릴 떡도 한 무더기 샀습니다. 그저 찐 빵 하나 얻어먹고, 칠성사이다 한 병 얻어 마실 요량으로 작은 보따리 들고 따라나서곤 했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니 정겨운 시골 장터가 눈에 선하고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돈이 생기기 전에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경제활동이 있었습니다. 주로 물물교환이었지요. 돈이 생기기 전에는 소금이나 조개껍질 등이 물물교환의 기준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지어진 안데르센 동화가 기억납니다. 

어느 시골에 농사를 짓는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었지만 이 부부에게 특별히 다른 점은 아내의 상냥함과 친절한 말, 그리고 남편에 대한 순종에 있었습니다. 이 아내는 남편의 어떠한 일에도 잘했어요 라고 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어느 날 농부가 집에서 기르는 말을 보고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저 말을 팔아 좀더 큰 말과 바꾸고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떻소. 아내는 즉시 남편의 말에 동의했습니다.좋아요,그렇게 하세요. 농부가 말을 몰고 시장으로 가다가 살찐 암소를 몰고 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새끼를 밴듯 배가 통통히 부른 암소를 보자 농부는 자기의 말과 그 암소를 바꾸었습니다.한참 더 가다가 암양 한 마리를 끌고 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암양을 보니 참 앙증스럽고 귀여워서 자기의 암소와 바꾸었습니다.암양을 이끌고 가는데 거위 한 마리를 안고 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거위를 처음 본 이 농부는 너무 신기하여 자기의 암양과 바꾸어 버렸습니다.거위를 안고 한참 가다가 붉은 벼슬을 단 장닭을 안고 가는 사람을 만나 다시 거위와 장닭을 바꾸었습니다. 한참 가다가 어떤 사람이 썩은 사과 한 자루를 지고 가는데 뒤에서 냄새를 맡으니 사과 썩는 냄새가 향긋한 것이 좋았습니다.이 농부는 자기가 안고 가던 장닭과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맞바꾸었습니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어느 여관에서 하룻밤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함께 투숙한 귀족 두 사람이 자루에서 사과 썩는 냄새를 맡고 무엇이냐고 묻자 이 농부는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이 말을 들은 귀족은 농부에게 이제 당신은 큰일 났다며 집에 돌아가면 당신의 아내가 화가 나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농부는 귀족에게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나의 아내는 그래도 잘했어요 할 것입니다.이때 귀족은 내기를 걸었습니다.만약에 당신의 아내가 그 말을 듣고도 당신에게 잘했어요라고 한다면 내가 가진 금화를 모두 주겠소. 이튿날 농부는 썩은 사과 한 자루를 지고 귀족과 함께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된 일을 모두 이야기 했습니다.크고 튼튼한 말 한 필을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어 가지고 온 이 남편을 보고 아내는 말했습니다.여보, 참 잘했어요.그렇잖아도 식초를 만들기 위해 썩은 사과가 필요했었는데 당신 적당한 때에 참 잘 준비해 왔어요.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귀족은 크게 감탄했습니다.이런 가정이라면 내가 마땅히 도와주어야 한다.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금돈을 주머니째 주고 갔습니다. 

거룩한 낭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명국가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훈련받은 젊은이들이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남미의 정글로 갔습니다. 어떤 때에는 이들의 수명이 평균 6개월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짐을 관에 넣어가지고 가기도 했습니다.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죽어가고 풍토병으로 쓰러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을 선교사라고 불렀습니다. 무지한 미개인들을 위해서 사라져간 순교자들과 생존하여 죽기보다 고통스런 삶을 사신 분들을 보고 낭비라고 하자 낭비라면 거룩한 낭비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130여 년 전에 한국에 오셨던 알렌, 언더우두, 아펜셀러,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드님은 자기 생명을 몽땅 내어주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농부의 말이 썩은 사과 한 상자로 바뀌었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저와 여러분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가 낭비라고 하겠습니까? 농부의 아내처럼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께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참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하나님은 지금도 물물교환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거룩한 물물교환을 생각합니다. 선교지에서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생명을 쏟아 붓는 선교사님들을 통해서도 물물교환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배고픈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병든 자와 갇힌 자를 찾아보며 우리 자신을 내어줄 때에도 이 하나님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물물교환을 합시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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