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신사(紳士)와 크리스천

황의정 목사 0 10,041 2018.05.03 09:02

신사하면 생각나는 것이 영국신사입니다. 우선 신사복이 영국 사람들이 입는 평상복이지요? 비오는 날이 많아서 우산을 들고 있는 신사가 영국신사의 모습니다. 그러나 진짜 영국 신사는 외모가 아니라 정신과 질서와 법을 지키는 삶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2차 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수상이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경찰에 딱 걸렸습니다. 그러자 처칠 수상이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보게, 경찰관, 내가 처칠수상인데 지금 긴급각료회의를 소집해 놨어. 시간이 촉박해서 그러니 그냥 좀 보내주시게나!하고 부탁하였습니다. 경찰관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얼굴 모습을 보니 처칠수상과 아주 비슷합니다만 제가 아는 수상 각하와는 법을 지키려는 태도가 사뭇 다릅니다! 그리고 스티커를 발급했답니다. 나중에 처칠 수상이 경시 총감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에 자신에게 스티커를 발행한 경찰관을 특진을 시켜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경시 총감이 말합니다. 수상 각하, 그 경찰관은 자기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입니다. 그런 경찰관을 특진 시켜줄 규정이 없습니다. 정말 멋진 영국 신사답다고 해야겠지요? 

미국 육군 장교에게는 신사(Gentleman)가 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답니다. 제가 미군부대에 카투사로 근무하면서 보니까 백인이든 흑인이든 장교들은 탁월했습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사병들 앞에서 절대로 허점을 보이지 않고 솔선하였습니다. 사병들이 저절로 존경하며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사라는 것이 저런 것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사병들 중에는 뚱뚱한 사람이 더러 있는데 장교들은 하나같이 날씬합니다. 사병들은 새벽마다 일어나서 구보를 합니다. 장교들은 그럴 의무가 없습니다. 하지만 각자가 일어나서 모두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하는 최강대국의 육군 장교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입니다. 

한국에서 신사는 어떤 모습일까요? 좀 주책이지만 빈대떡 신사라는 노래가 생각이 나네요.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다. 왜 맞을까? 왜 맞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 돈이 없어.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요릿집이 왠 말이냐? 기생집이 왠 말이냐? 하지만 한국의 신사는 양반이 있습니다. 원래 양반이란 문반과 무반에서 벼슬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양반이라고 했습니다. 양반은 살신성인의 자세로 살아 위로 임금님을 받들고 나라를 세우고, 아래로 백성들을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헌신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가끔은 해학적으로, 또는 조소가 섞인 말투로 양반을 비웃기도 하지만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철저하게 자신의 인격과 학문을 연마하며, 나랏님과 백성을 위하여 노심초사하는 것이 이상적인 양반이었습니다. 과거 시험이 한시를 짓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어느 분의 글에서는 인류 역사상 시인들이 정치를 한 나라는 우리나라(조선)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란 말도 바로 이런 양반들의 신사도에서 유래한 말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우리 민족은 신사의 나라요 신사 민족이었던 샘입니다. 한 나라가 세워져서 500년을 이어간 나라가 인류 역사에 몇 없는데 조선이 500년을 간 것은 이 양반, 즉 조선의 신사들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질만합니다.

성경의 민족인 유대인은 어떨까요? 이들은 참 막무가내요 무자비하게 나옵니다. 우선 왜곡된 선민의신(選民意識)으로 이방인들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또 예수님에 대해서도 유대인 지도자들은 아예 예수님의 증거를 거부하기로 작정을 하고 달려들어 죽이려고만 했습니다.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또 객관적인 증거조차도 눈을 감고 거부했습니다. 유대인 자체 내에서도 보수적이고 세속적인 사두개파와 진보적이고 영적인 바리새파로 양분되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경쟁하고 싸웁니다. 지도자들이 이념적으로 분열한 상태에서 양반의 모습이나 신사도를 찾기 어렵습니다. 자기들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불법을 자행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면서도 인간적인 최소한의 정조차도 표현하지 않았던 냉혈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말 신사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성경에서 신사로 등장하는 사람은 베뢰아 사람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너그러워서(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7:11-12).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듣고 진지한 태도로 성경을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믿는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다. 신사는 이런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깡패를 동원하여 핍박하고, 베뢰아까지 와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만 베뢰아 사람들은 너그럽게 듣고 진지하게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무명의 성도들이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러 다닙니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신사요 군대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 솔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나가서 전도하는 우물가의 여인, 믿음이 좋은 수로보니게 여인, 구제하는 과부가 신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사여야 합니다. 신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신사가 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엡2:10)는 말씀이 이를 증명합니다. 날마다 신사가 되어가는 것이 성도로서 변화를 받아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둘로스 가족 여러분, 당신은 신사입니까? 신사가 되어가고 있나요? 신사와 숙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