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자라지 마라! 고등학교 때 도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의 웅변 제목이었습니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목에 심취해서 웅변하는 동안 내내 생각에 빠져있었거든요. 부모님들은 얼른 자라라고 먹이고 입히시는데. . . 우리도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 . 참 엉뚱한 생각을 하는 친구구나! 그런데 어떻게 저 친구가 1등을 했을까? 시민회관에 앉아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잠겼었지요.
철이 들고 어른이 되어 생각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우선 잘 웃습니다.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웃음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자라지 말라고 했나봅니다. 어린이들은 친구를 참 잘도 사귑니다. 어른들은 아직 통성명과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깔깔대고 웃습니다.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합니다. 사람과 어울러 사는 것이 인간인데 자라면서 낯선 사람과 사귀기를 어려워하니 자라지 말라고 했나봅니다. 어린이들은 잘 믿습니다. 어른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내일 사 줄게! 다음 장날 사다 줄게! 취중에 하신 아빠의 말을 얼마나 철석같이 믿는지요. 다음 장날이 되면 아이는 동네 입구에 나가서 아빠를 기다립니다. 약속한 선물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지요. 먼저 큰 형이 아빠는 절대로 안 사 오신다고, 술 취해서 하신 소리라고, 전에 나한테도 그랬다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손을 잡아끌어도 꿈쩍도 안합니다. 자라면서 불신이 커집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불신병(의심병) 말기 환자가 되지요. 아내도 못 믿고 남편도 못 믿게 됩니다. 목사님도 못 믿고 신자도 못 믿게 됩니다. 아, 그래서 아이야 자라지 말라고 했나보다 생각합니다. 어린이는 철저하게 의지합니다. 엄마의 품에 안겨서 쌔근쌔근 잠도 잘 잡니다. 아빠의 넓은 등에 엎여서 곤한 잠에 빠지면 목이 뒤로 홱 젖혀지고, 한없이 뒤로 넘어집니다. 아빠는 아이를 바로 엎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엄마 품에서, 아빠 등에서 염려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는 절대의존의 생각이 DNA처럼 있나봅니다. 어른이 되면 자동차를 타도 불안하고, 비행기를 타도 손바닥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손잡이를 부여잡고 안간힘을 씁니다. 맡길 줄을 모릅니다. 의지하면 불안합니다. 아, 그래서 자라지 말라고 했나봅니다. 어린이는 잘 웁니다. 웃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하고, 공감도 잘 합니다. 아파도 울고, 슬퍼도 울고, 무서워도 울고, 배가 고파도 웁니다. 감정이 눈물에 순화가 되는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울면 안 돼! 우는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데!라고 거짓말로 쇠뇌를 시켰습니다. 이제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메말라버렸습니다. 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지만 그림의 떡처럼 되어버렸지요. 그래서 자라지 말라고 했나봅니다. 어린이는 놀기를 좋아합니다. 하루 종일 놀아도 또 놉니다.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얼마나 창의적인지 감탄이 절로 납니다. 놀이는 심리학자들 말에 의하면 인간의 본능이랍니다. 어른이 되어 잃어버린 것이 놀이지요. 매사가 계산적이고 심각하고 분주하지요. 그래서 자라지 말라고 했나봅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웃고, 낯선 사람들과 많이 사귀고, 함께 즐겁게 노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가 되어야 천국에 간다잖아요?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어린이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우리 모두 어린이가 됩시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