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광인(狂人)이 광인(光人)이 되다!

황의정 목사 0 12,020 2018.04.21 08:27

예수님께서 어느 날 더러운 귀신이 들린 사람(狂人)을 만났다. 이 사람은 무덤에 살고 있었다. 쇠사슬과 고랑으로 묶었지만 힘이 어찌나 센지 다 끊어버리고, 밤낮 산이나 무덤에서 소리를 지르며, 자기 몸을 상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의 비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그는 힘이 있으나 조절이 안 되고, 오히려 그 힘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 이 사람은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사람 사이에서 살지 못하고 무덤이나 산을 배회한다. 밤낮 큰 소리를 지르지만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그리고 자신조차도 그 부르짖는 소리의 의미를 모른다. 제 몸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자학적인 삶을 산다. 현대인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힘이 많다. 그러나 점점 그 힘으로 자신을 망치고 있음을 본다. 모여살고 층층이 쌓여 살지만 어느 때보다도 서로에게서 소외되어 산다. 모든 관계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무덤처럼 어둡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항상 말하지만 의미도 없고, 듣는 사람도 없어서 더욱 울부짖는다. 그 많은 힘으로 자신을 망치는 삶을 향해 더욱 치닫는다. 무가치, 무의미, 무목적, 그리고 무 방향, 무 희망의 삶이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한 말이 참 인상적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막5:7). 한 때 한국에서 자조적인 표현이 유행했었다. “내버려 둬, 이대로 살다가 죽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의 말과 얼마나 닮았는가? 현대인은 소외와 파괴의 삶을 살면서도 예수님께는 큰 소리를 친다. 나는 당신과 상관이 없으니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사실 이 사람의 외침이나 현대인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대한 외침은 자신의 소리가 아니다. 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더러운 귀신인 것이다. 이 사람은 피해자요 속고 사는 자요 불쌍한 자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박하지만 누가 자신을 도와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처지이다. 변화를 위해 발버둥치지만 매번 절망하는 현대인의 모습 아닌가? 예수님께서 이 사람 안에 있는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셨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5:8). 이 귀신을 돼지 2,000마리에게 보내버렸다. 돼지 2,000마리가 한꺼번에 물에 빠져 몰살하면서 이 사람이 자유롭게 되었다. 옷을 입고, 제 정신이 돌아왔으며, 조용히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께 제자로 삼아서 데리고 다녀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명령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친척들과 데가볼리에 전도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자기를 어떻게 불쌍히 여기시고, 어떻게 고쳐주셨는가를 열심히 전한 것이다. 데가볼리는 10 고을이라는 이름이다. 10 동네를 하나로 묶어놓은 미국의 카운티 같은 단위이다. 얼마나 위대한 변화인가? 외로운 광인이 세상의 빛(光人)이 된 것이다. 현대인은 중병에 걸려있다. 이 거라사의 광인과 진배없는 비참한 삶을 산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예수님이 필요하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하나님이 인간되어 오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하신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덩달아 미치광이로 사는 인생들이 어둠을 물리치고, 질서를 회복하고, 관계를 정립하고, 이성과 의지와 감성의 제정신을 회복하고, 새 세상을 건설하는 광인(光人)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狂人입니까? 光人입니까?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이 狂人의 체험이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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