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고난의 프리즘(Prism)

황의정 목사 0 10,993 2018.05.03 08:29

누가 고난을 좋아합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고난을 피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고난에 익숙해졌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고난을 통하여 아무 유익을 얻지 못했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아무도 피할 수 없고,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우리 삶에 늘 함께 하는 고난입니다. 모두가 고난을 대항하여 싸우지만 아무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고난을 우리 곁에 그렇게 가까이, 그리고 자주 두시는 것일까요?

고난의 2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잘 못해서 받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 자기가 잘못한 대가로 받는 고난은 잘 참아도 상을 받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구속적 고난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가장 대표적인 구속적 고난입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신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는 고난이 다음입니다. 이런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엄청난 상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운다고 고백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고난 받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고난 받는 것이 유익이다! 고난 받음으로 그릇된 생각과 행동과 연약함을 극복했다! 성숙해졌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그는 분명 위대한 사람일 것입니다. 

고난의 유익이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고난당하신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이 말은 진리입니다만 너무 커서 우리 마음에 확 와 닿지 않습니다. 또 우리의 고난이 예수님을 위한 고난이라 할지라도 인류를 구원하는 정도가 되지는 못합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일까요? 고난 주일을 맞이하면서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고개를 돌려 생각을 떨쳐버리고 싶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생각을 어찌합니까?

고난은 인생의 프리즘입니다. 프리즘은 분광기(分光器)입니다.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영롱한 무지갯빛을 만들어냅니다.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빛은 수줍어합니다. 자신의 속살을 다 드러내었으니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요? 고난은 우리를 속속들이 드러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다 드러납니다. 고난 중에 제일 먼저 상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힘들거든요. 불평을 하게 되고, 원망을 하게 되고, 깊이 상하여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신체적으로 병이 나기도 합니다. 신앙심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강한 사람은 다릅니다. 고난 중에 그가 가진 인격과 성품이 빛을 발합니다. 고난극복의지가 발동합니다. 고난 중에 내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 고난이 나를 강하게 할 것이라고 외치며 평소에 안보이던 힘과 지혜를 발동합니다. 그의 신앙이 강한 힘으로 살아납니다. 극한 환난과 시련 중에서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가 빛처럼 드러납니다. 성숙과 승리가 그의 보상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부활의 즐거움, 승천의 즐거움, 죄인들이 구원받는 즐거움, 영광중에 재림하실 즐거움을 바라보셨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안에 있는 바로 이 사랑과 믿음이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고난 중에 어떤 내가 나타났습니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인내가 찬란한 빛으로 나타났습니까? 우리 모두 고난의 프리즘을 사랑하게 됩니다. 성숙한 만큼. . .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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