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사랑의 매(?)와 징계의 채찍! 2010.10.21

황의정 목사 0 1,635 2018.04.21 08:24

얼마전 한국 교육계의 원로들이 석고대죄(席藁待罪)를 하고, 채찍으로 자신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교육계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참회하는 모습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장로님이신 5-6학년 때의 스승께서 말안듣고 공부 못하는 우리 반 학생들 앞에서 자기 종아리를 때리면서 비장한 훈화를 하시던 장면이 떠올라 지금은 수몰된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의 잘 못을 자기의 책임으로 알고 스스로를 징계하는 채찍의 충격과 피멍이 드는 선생님의 종아리를 보는 고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러기 아빠가 16세된 아들이 엄마와 카나다에 유학 중에 결석을 하고 밤 늦게 다닌다는 것을 알고 태평양을 건너가사 아들을 채찍으로 100대를 때렸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 변화되지 못한 아들의 모습이 엄마에게 대들기까지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또 다시 가서 이번에는 300대를 때렸답니다. 검찰에 고발이 되어 재판 받는 자리에서 사랑의 매라고 강변하고, 또 이것은 한국의 문화라고 하여 실형을 면하고 2년간의 보호관찰 판결을 받았답니다.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자녀 교육을 위한 부모님의 수고와 희생은 측량 불가한 일입니다. 더욱이 부부가 천리만리 떨어져 살면서까지 희생을 하고 있다면 무엇으로 보상하거나 위로할 수가 있을 것이며, 어떻게 하면 충분한 격려가 될 수 있을까요? 매를 들어본 부모라면 그 아버지의 고통은 사실 아들의 엉덩이나 상한 가슴보다 몇 배 더 할 것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채찍은 참 오래된 역사가 있습니다. 특히 자녀 교육 수단으로서의 채찍도 그렇습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로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아)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2:8)고 말합니다. “차마 초달(매질)을 못하는 자는 자식을 미워하는 자”(잠언13:24)라고 고발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언 22:15)고 합니다. 성경은 부모의 근실한 징계로서의 채찍을 권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법도 무조건 자녀에게 드는 채찍을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채찍의 의미와 효과를 인정하는 성경에는 한계를 정해두었습니다. 율법에는 최대 39대를 땔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아 채찍을 많이 맞았습니다. 그 때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후11:24)고 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러기 아빠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사랑의 경계선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하여 안타깝습니다. 이 선을 넘으면 사랑의 매가 독약이 되어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반발을 더욱 사는 결과를 초해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세 자녀를 키우면서 심한 매를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4학년이 되면 매를 극도로 자제했습니다. 왜냐하면 4학년부터는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하고, 합리와 비합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선악의 기준이 징계를 받는가 안 받는 가로 인식되기 때문에 꼭 매가 아니라도 잘못에 대한 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고난 주일입니다. 오는 금요일은 영어로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입니다. 좋은 금요일이라는 말이 너무 노골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상 그 날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성난 함성 속에서 로마 병정에게 120대의 채찍을 맞은 날입니다. 유대법과 달리 로마법에는 사형수에게 채찍 120대를 때리도록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때리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심판과 징계의 채찍을 드셔야 마땅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매를 맞으셨습니다.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처럼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매를 맞으셨습니다. 유대인들과 로마 병정들은 예수님을 징계하는 것으로 자부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스스로의 종아리를 피나게 때리시던 선생님처럼 스스로를 징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채찍의 약효가 나서 오늘 우리가 병이 낫고, 용서받고,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매 맞을 우리 대신 상하시고, 찢기시고, 버림받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매 맞을 사람은 자녀들이 아니고 못난 우리 부모들이란 생각을 합니다. 매를 들고 화를 내기 보다는 스스로의 종아리를 때리시는 선생님처럼, 스스로 매를 맞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신 예수님처럼 우리 못난 부모들이 철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가, 목사가, 장로가, 지도자가 채찍을 맞아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살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채찍은 치유를 낳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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