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아버지여, 담대하라!

황의정 목사 0 10,532 2018.05.03 07:35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면서 가장 초라한 이름입니다. 시작은 화려하고 위대한데 점점 작아지는 것입니다. 훌륭함과 평범함 그리고 못남이 극명한 것이 아버지입니다. 훌륭한 어머니와 평범한 어머니, 그리고 못난 어머니도 차이가 있지만 아버지만큼은 아닙니다. 어머니에 대하여 거의 자동적으로 친밀함을 느낍니다. 아버지는 다릅니다. 자녀들과의 친밀함은 고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아닙니다. 저절로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합니다. 

게다다 매일매일 가족의 생계라는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려 삽니다. 분주하게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살다가 집에 들어갈 때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입니다. 소위 무드 전환이 잘 안된다고나 할까요? 갑자기 집에 들어서면서 투사가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아빠가 되기 어렵고, 또 어찌어찌 노력을 해보지만 왠지 어색합니다. 그래서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도 신문을 뒤적거리거나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립니다. 옛날의 아버지가 좋았습니다. 그 때에는 밥이 되나 죽이 되나 아버지 혼자 벌어서 먹여 살렸으니까요. 불평불만이 있으면 아빠가 너희들 먹여 살리느라고 여유가 없었단다! 핑계할 수가 있었거든요. 요즘은 능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내가 힘을 보태지 않으면 살기 어렵게 되어버렸잖아요. 미국에 와서는 더욱 왜소해졌습니다. 엄마들은 아무 일이나 해서 조금씩이라도 벌수가 있는데 남자들에게는 그게 여의치 않습니다. 아침에 함께 일터로 나갔다가 지쳐 돌아온 아내를 보면 부엌에 들어가서 거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괜히 좁은 부엌에서 거치적거리기만 하니 이래저래 죽을 맛입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작아지는 아빠들을 보면서 이러저런 생각을 하니 제 마음이 쓸쓸해지네요. 불쌍한 아버지! 초라한 아버지! 내 마음의 아버지는 한 없이 크신 분이셨는데. . . 

하지만, 아버지 여러분, 담대하십시오! 저는 아버님 날 낳으시고. . . 를 좋아합니다. 아버지가 낳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기르시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명쾌한 통찰입니다. 어찌 이것을 작다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 당당하게 예배와 순종을 명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날 이 땅에 있게 하셨으니 역시 아버지는 담대할 이유 있습니다.

아버지는 무어라고 말을 하거나 무엇을 해 주거나 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자리만 가만히 지키고 있으면 아버지가 됩니다. 자꾸 무슨 말을 하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들어만 주면 아버지가 됩니다. 흠 하고 헛기침 한 마디에도 자녀들을 아버지의 존재를 느낍니다. 자기 전에 아이들 방문을 열고 살짝 들여다보기만 해도 아버지가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걷어차 버린 이불을 다시 덮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아버지가 됩니다. 엄마는 기도를 잘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기도는 늘 침묵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뭐가 문제입니까? 아버지는 말없이 말하시는 천재이신걸요. 아이들도 그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함께 조용히 앉아서 눈만 감으세요. 사실 아버지의 기도는 갈등속에 들여지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주세요 하다가도 내가 그만큼 뒷바라지도 못하면서 허황되게 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어떤 때는 아비의 꿈이 겨우 이정도면 아이의 장래를 막는 기도가 아닐까도 생각하는 것이 아버지입니다. 

어제 저녁에 큰 아이가 우리 가족을 모두 데리고 중국식당에 갔습니다. 아버지날이라고요. 식사 기도를 통해서 못난 아비의 마음을 울먹이게 하더니 동생들부터 아버지에게 감사한 것을 한 가지씩 말하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다그치니까 둘째가 말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딸아이도 말합니다. 식당의 소음에 잘 못 들었지만 아빠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충분히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 애가 말합니다. 아빠가 새벽마다 기도해주실 때, 아빠의 성실하심과 하나님 중심으로 사시는 삶으로 본이 되어준 것이 감사하다고. 아빠의 절반만 해도 자기가 좋은 아빠가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제가 한 마디 해야 할 차례였지만 그냥 밥만 먹었습니다. 고맙다. 내가 이만한 아버지가 되도록 기다려줘서 고맙다. 약속하마. 더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아버지 여러분, 아이들은 기다려줍니다. 더 좋은 아빠기 되도록 기다려줍니다. 아버지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도와주십니다. 아버지, 담대하세요! 아버지의 초라함은 우리의 슬픔이거든요.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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