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교회 안의 작은 교회

황의정 목사 0 10,800 2018.05.03 07:34

1996년에 Fuller 신학교에 유학을 왔습니다. 학교 서점의 강의 교재를 진열한 서가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소그룹 사역(Small Group 사역)이라는 과목에 조용기목사님께서 쓰신 Successful Home Cell Group(성공적인 구역)이라는 책이 교과서로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한글로 읽고, 1990년대에 영어로 읽었던 책인데 세계적인 신학교 강의의 교과서라니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성장하는 한 방편이 구역사역이었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 6명을 전도하면 그 분들을 이끄는 구역장이 되고, 자기가 만든 구역에서 세포분열을 하여 6구역이 되면 조장이 되는 제도입니다. 저희 교회에도 그 조장 출신 권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한국에서는 교회마다 매주 금요일에 구역예배를 드립니다. 금요일이 되면 오전부터 아파트 안에 여기저기서 찬송과 기도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구역식구 중에 병자나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매일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에 함께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멀리 사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은 저절로 체험합니다. 주일이면 서로서로 연락해서 함께 교회를 가고, 결석하는 가정은 주중에 전화하고, 심방하고, 정말로 철저하게 서로의 삶을 돌봐주는 끈끈한 사랑의 띠로 묶여서 함께 살았습니다. 이것이 70-80년대의 한국교회의 풍경이었습니다. 

삶이 복잡해지고 교회는 대형화되면서 구역 사역이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바쁘다, 바빠! 한국인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지요. 모여서 간단하게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얼른 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헤어지면 전도하던 열정이 식으면서 서로의 허물을 물어내는 모임이 됩니다. 교회마다 구역사역에 대하여 소극적인 자세가 되었지요. 서구 교회는 한국교회의 구역사역을 너무나 훌륭하게 생각하여 서로 배우려고 열심일 때, 한국교회는 슬그머니 귀찮은 존재로 전락시켰습니다. 서구교회는 주일에 한 번 모여서 예배드리고 헤어지니까 성도의 진정한 교제가 없어서 외롭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섬겨주고 축복할 가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역 사역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소그룹사역이 발전하여 가정교회, 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 개발되고 있고, 한인교회들 중에도 목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도입되고 있습니다. 역수입이라고 할까요?

AD 30년경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는 교회 건물이 전혀 없을 때입니다. 성령 받은 성도들이 나가서 전도하면 한 곳에 다 모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최초의 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2:42). 말씀을 배우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교제가 있고, 함께 애찬을 나누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교회, 그리고 전심으로 기도하는 작은 교회가 오늘 우리의 구역의 모델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행2:44-45). 친형제 간에도 재산 싸움이 비일비재합니다. 죽마고우지간에도 돈 때문에 의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고,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나눠주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도 없고, 배고픈 사람도 없고, 소외된 사람도 없도록 사랑의 띠로 묶여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얼마나 감동적인 묘사입니까? 사도들이 가르치고, 사도들을 통해서 기사와 이적이 많이 나타나고, 성도들이 그 가르침대로 철저하게 순종하고 사랑하는 작은 교회들이 모여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대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전통이 중세에 들어가서 사라졌습니다. 진정한 교제와 사랑의 나눔은 없어지고 의식과 전통만이 남아서 숨통을 죄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하였지만 유럽의 교회들은 이런 작은 교회의 비밀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중엽에 영국의 요한 웨슬리의 감리교운동이 일어나면서 소그룹 사역이 살아났습니다. 속회원들이 매주 모여서 속장에게 한 주간의 경건생활(기도와 성경과 전도 등)을 점검받고, 1페니씩 헌금하고, 함께 떡을 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민생활이 각박하여 자꾸 위축됩니다. 바쁘고, 피곤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 또 서로 비밀이 많고. . . 이런저런 것들이 모여앉아 오순도순 교제하고 나누기를 훼방합니다. 그래서 피하고 싶고, 간단하게 넘어가고 싶지요. 하지만 이민생활보다 구역을 통한 친밀한 교제가 더 필요한 삶이 없습니다. 교회에 모여서 함께 축제의 예배를 드리고, 구역으로 모여서 친밀한 교제를 나눔으로써 초대교회의 영성을 회복하고, 초기 감리교회의 역동적인 성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교회로 모여서 치유와 회복, 받은 은혜를 나눔으로 성령 충만을 회복하게 됩니다. 미숙하면 미숙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서로 웃어주고, 격려하고, 덮어주고, 감싸주는 구역 모임이 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무궁무진한 은혜의 보고가 열려질 것입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구역예배 주일입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도 함께 하시는 구역예배로 모입시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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