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어머니의 턱뼈

황의정 목사 0 15,974 2018.04.28 08:54

어릴 때의 일입니다. 7남매 6형제 9식구가 옹기종기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습니다. 숟가락 젓가락 소리가 요란합니다. 찌께 그릇에서는 숟가락이 충돌하고, 어쩌다 맛보는 고등어조림이나 갈치 접시에는 젓가락이 현란하게 춤을 춥니다. 어떤 때는 함지박에 밥을 비벼먹는데 처음에는 느긋하게 먹다가 어느덧 서로 자기 몫을 나누어 한 쪽에 모아둡니다. 아무도 못 먹는다고 선포를 하지요. 하지만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밥 무더기가 푹푹 줄어듭니다. 억울하다고 울고 있으면 그마저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지니 울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내 입에 들어간 것만이 내 것이라는 진리를 그렇게 일찍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즐거운 식사 중에 갑자가 엄마가 아, 내 턱! 하십니다. 아래턱뼈가 내려앉은 것입니다. 성격은 급하시고 목소리는 크셨지만 평생에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신 아버님도 이때는 날렵하게 움직이십니다. 두 손으로 얼른 엄마의 내려앉은 턱뼈를 다시 붙여주십니다. 언제부턴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지만 늘 궁금하던 저는 어느 날 어머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니 아버지에게 맞아서 턱뼈가 떨어졌다!”저는 아버님께서 폭력을 행사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자식들을 징계할 때에도 꼭 매를 드셨지 손으로, 주먹으로 때리는 것을 보지 못했었습니다. 매우 의아했지요. 어머니를 때리시다니!

아버님은 젊어서 경찰이셨습니다. 시골 지서장을 지내셨는데 모범 경찰로 도지사 표창과 이승만 대통령 표창도 받으셨습니다. 어린 우리들은 아버님의 표창장을 보여주면서 이것만 있으면 무슨 죄를 지어도 한 번은 나라에서 용서해준다고 자랑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그만큼 아버지는 우리의 자랑이요 영웅이셨습니다. 나중에 아버님께 어머님을 때리신 사연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불량 청년이 경찰에 붙잡혀왔습니다. 그 청년의 아버지는 별로 뉘우칠 기색이 없는 아들을 대신하여 연신 굽실거리면서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빕니다. 어림도 없다고 호통을 치시면서 법대로 벌을 받아야 사람이 된다고 나무라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빌어도 소용없으니 아버지는 빨리 집으로 가라고 쫓아버렸습니다. 차근차근 젊은이와 대화를 나눈 아버님은 포승줄을 풀어주면서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실수를 저지른 착한 청년임을 아셨답니다. 이 청년이 자유로운 몸으로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앉습니다. 이번에는 아버님께서 내가 화장실을 얼른 다녀올 테니 여기 꼼짝 말고 앉아있으라고 단단히(?) 일러놓고 미적미적 한참을 화장실에서 지체하고 돌아오면서 창으로 들여다보니 아직도 이 청년이 다소곳이 앉아있습니다. 아버님의 뜻을 못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창 밖에서 먼 산을 보면서 한참을 밖에서 서성대고 있으니까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엉금엉금 걸어서 나갑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달아났습니다.

그 다음 날인가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주임 관사 뜰에 쌀 두 가마니가 쌓여있습니다. 그 청년의 아버지가 놓고 간 것입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대쪽 성품을 아시니까 절대로 받으면 안 되는 줄 알고 도로 가지고 가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내려놓고 가는 쌀가마를 어머님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다짜고짜 한 번 휘려 친 것이 그만 턱이 내려앉았습니다. 어머님은 “평생 니 아버지한테 그 때 딱 한 대 맞았다!” 고 하셨습니다.

어제부터 제 턱이 좀 아팠습니다. 밥을 씹기가 불편하였습니다. 턱뼈가 걸리는 귀 부분이 거북하고 만지면 약간의 통증이 있었습니다. 손으로 아픈 부분을 만지며 기도하는데 어머님의 턱뼈 생각이 났습니다. 부모님은 1946년에 결혼하여 2005년 어머님께서 먼저 천국가실 때까지 60년을 함께 사시고, 지금은 전북 임실 국립묘지에 합장으로 함께 누워계십니다. 천생연분이죠?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에 대하여 진노하셨습니다. 화있을진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여! 하고 준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성전에서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꿔주는 장사꾼들의 상을 뒤엎으시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셨습니다. 이를 의분(義憤)이라고 합니다. 유일하게 용납되는 분노, 또는 권장되는 분노입니다. 잘 못된 분노로 천생연분이 상합니다. 분을 다스리어 평화와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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