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 .

황의정 목사 0 14,449 2018.04.28 08:28

어머니를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입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어머님 마음에 아픔을 많이 드렸습니다. 병치레를 많이 한 것이 그랬습니다. 손버릇이 나빠서 아버지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어머님이 제 목을 조르면서 “너 죽고 나 죽자, 이 놈아!” 하시면서 우시던 기억은 제게도 참 깊은 아픔이 되어 남아있습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어려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늘 끼니를 걱정하시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오랜 병을 앓으시던 아버님께는 이밥을 드리고, 우리들에게는 보리밥을 주시면서 미안해하시던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아버님의 사업 실패 이후에 마지막 재산을 투자하여 산을 샀습니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서 산을 개간하여 넓은 밭은 많이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으신 부모님은 참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뽕나무도 심어 누에를 치던 일, 도라지를 심어서 수확기가 되면 1미터도 넘게 파면서 도라지 캐던 일과 꽃이 필 때면 온 천지에 눈이 내린 것 같던 메밀 농사도 생각납니다. 고추를 따던 일이 기억납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만 따야 하는데 녹색과 빨간 색을 혼동하는(적녹색약) 저와 바로 위 형은 푸른 고추를 한 자루씩 따기가 일쑤였습니다. 나중에 색약은 외가에서 유전한다는 것을 배운 형의 설명을 듣고서 맥을 탁 놓으시던 어머님이셨습니다. 그 때 이후로 저희는 사이사이 심어놓은 물 오이를 딸 때만 고추밭에 들어갔습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조금만 더 일을 하고 가자고 하셨습니다. 짜증을 냈습니다. 어머님은 아무 말씀 없이 목적하신 만큼 일을 하셨습니다. 얼마 후에 집에 손님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어머님은 저를 칭찬하셨습니다. “우리 의정이는 참 착해요. 밭에서 일하다가 내가 그만 가자고 해도 조금만 더 하고 가자고 한답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어머님은 제게 대한 기대를 이렇게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어머님은 몹시 아프셨습니다. 1년 이상을 꼼짝없이 누워계셨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다가는 자식들 공부 못시킨다면서 산과 밭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도시로 이사를 했는데 그만 병이 나신 것입니다. 가난한 도시 생활은 농사보다 모진 고생이었겠구나 하는 것은 좀 철이 든 다음의 생각입니다. 저는 어머님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한 철부지였습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릅니다. 어머님은 배 아파서 저희 7남매를 낳으셨습니다. 자식 욕심이 남달랐던 어머님은 저희들을 귀찮게 여기시던 모습이나 언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 어머님이 모진 질병 끝에 예수님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제 삶의 고비마다 어머님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헌신하여 목회자가 되는 길에서 어머님의 무릎은 시골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 같았습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온 몸에 눈물이 흐릅니다. 10여년 전에 선교지로 떠날 때, 미리 꿈을 통하여 알고 계셨던 어머님은 두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려고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다짜고짜 말씀하십니다. “의정아, 너 멀리 외국에 나가냐?” “왜요?” “아니. 내가 꿈을 꾸니까 네가 검은 사람, 흰 사람, 노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높이 서서 설교하더라. 너 다른 나라로 가는 것 아니지?”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해주셨구나 하면서도 참 죄송했습니다. “어머님, 그 일 때문에 내려왔어요. 선교사로 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한 참 후에, 체념하신 듯 자랑스러우신 듯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종이니까 하나님이 어디든지 보내시겠지. 하나님 종이니까 어디서든지 함께 해주시겠지! 내가 기도 많이 하마!” 외국에 살면서 자주 뵙지 못했습니다. 집사람과 아이들은 7년 동안 부모님을 못 뵈었습니다. 불효가 따로 없습니다. 부모님 가슴에 그리움의 웅덩이 파는 것이 불효지요.

어머님을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납니다. 엊그제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이들 사진 박아서 보내라고 하십니다. “너희들은 안 싸우고 살아서 좋다!”고 하십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지요. 7남매가 다 행복하게 오순도순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머님은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집사람에게 아이가 몇이냐고 묻기도 하십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부쩍 “언제와? 보고 싶어 죽겠네!”하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마냥 기다려주실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리 오래 기다려주실 것 같지 않습니다. 어머님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말할 수 있을 날도 길지 않은 듯합니다. 불효자식은 부모님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 한다(不孝父母 死後悔)는 주자의 말이 아니라도 꼭 그리될 것만 같습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습니다. 사랑하면서 이렇게 아픔과 슬픔과 그리움만 줄 수는 없습니다. 그저 어머님을 생각하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님의 자녀입니다. 자식 귀한 줄 아는 것의 절반만이라도 부모 귀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격동기를 지나오신 우리 부모님들은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변화 속에서 당황스러워하시면서 우리들을 키워 주셨습니다. 있는 부모나 없는 부모가 별 차이 없고, 배운 부모나 못 배운 부모가 비슷하였습니다. 어버이 주일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잊고 살던 불효를 생각하게 하시니 은혜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우리 부모만 못한 부모가 된 듯합니다. “주님, 저희의 효심 없음을 용서하여 주세요. 도와주세요!”

둘로스 교회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 2003년 어버이주일에 적은 글입니다. 그리고 2년 후 2005년 6월 13일에 어머님은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그리고 불효자는 오늘도 후회하며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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