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우는 남자

황의정 목사 0 11,756 2018.04.28 08:26

저는 울보였습니다. 교실 두 칸을 터서 만든 간이 극장, 창마다 검은 천을 두르고, 전교생이 빼곡히 앉아서 영화 삭발의 모정을 보았습니다. 휴가 나온 아들에게 고깃국과 흰밥을 해 주시려고 머리를 잘라 파신 어머니, 수건을 쓰신 어머니 머리와 밥상을 자꾸 번갈아 보던 아들, 이내 목이 멥니다. 열차에 올라 부대로 돌아가는 아들 주려고 과일을 사가지고 허겁지겁 달려오시다가 아들을 부르며 넘어지고, 과일이 철로 변에 흩어질 때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교실에 혼자 남아서 엄마 찾아 삼만리를 읽으면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에 엄마가 이미 떠난 것을 알게 될 때에 한없이 울었습니다. 복도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창피해서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울던 기억이 납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다가 관속에서 잠을 청하는 장면에서 무서워서 울고,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라디오 연속극을 듣다가 가족들이 함께 울기도 했었습니다. 할 말을 못해서 억울해서 많이 울었고, 감상에 젖어서 울었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웃다가 눈물이 나면 순간적으로 혼돈이 오기도 했습니다. 왜 기쁜데 눈물이 나지?

언제부턴가 저는 더 이상 울지 않았습니다. 모질게 마음을 먹기 위해서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모릅니다. “너 또 울었냐? 남자가 왜 그렇게 눈물이 헤프냐? 아예 떼어 내버려라!”남자는 우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평생 3번 우는 것이다. 태어날 때와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만 운다. 여린 맘의 소년을 남자 만든다고 주위에서 들려주던 말들이 어느새 저를 세뇌시켰나 봅니다. 싸우다가도 먼저 우는 사람이 지는 것이니까 안 되고, 여자 아이들 앞에서는 더욱 울지 못했습니다. 느낌대로 울고 웃기보다는 이제 논리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의 표출은 나약함이고, 이성적 대응은 성숙함이라고 스스로 믿었습니다. 남자는 울지 않는다! 용감한 사람은 안 운다! 나의 잠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다시 눈물샘이 열렸습니다. 19살 어린 전도사는 설교하다가 자주 울었습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요. 예수님의 고난에 울고, 예수님의 사랑에 울고, 성령의 감동이 임하면 주체할 수 없이 울었습니다. 기도하다가 울고, 말씀을 읽다가 울었습니다. 저는 우는 전도사였습니다. 그 후에 또 눈물을 잃어버리고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상담 중에 한 대학생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포르노를 보는 장면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예수님께서 서서 울고 계신 장면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너 또 예수님 울릴 거냐? 물었더니 아니요! 하면서 웁니다. 5살 소아마비 소녀가 바지를 반쯤 내리고 화장실 바닥을 북북 기어가던 장면이 생각이 나서 엉엉 웁니다. 예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하고 기도했더니 그 자매는 더 크게 웁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처럼 하고 함께 기어가면서 울고 계신답니다.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늘 우리와 함께 울고 계십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신 예수님은(요11:35) 지금도 우십니다. 예수님은 울보이십니다.

지난 한 주간은 정말 많이 울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맘만 차악 가라앉고 울지 못했습니다. 생각만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조승희를 용서합니다! 버지니아 공대 강의실에서 총상을 입은 가렛 에반스 학생의 말에 울었습니다. 네가 그토록 필요로 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걸 알고 가슴이 아팠다는 바바라의 추도의 글에 울었습니다. 울어도 괜찮습니다. 아니 울 수 있어야합니다. 울보 예수님을 닮아야합니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으면 행복합니다. 남자 여러분, 많이 우세요. 지금은 울 때입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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